정은아_아르젠트 에이 디자인 대표

전 세계적으로 불황기에 나타나는 양극단의 소비성향인 앰비슈머(Ambivalent Consumer)가, 소비와 트렌드를 이끄는 Z세대를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미국 통계국에 따르면 미국의 Z세대 인구 중 48%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캥거루족’으로 집계된다. 이들은 비싼 월세와 생필품 지출을 줄이는 반면, 명품 브랜드를 소비하며 글로벌 명품 시장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 Z세대 역시 비슷한 소비 형태를 보인다.

불황과 함께 이전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팬데믹을 경험한 Z세대. 이들은 구매력이 높아진 MZ세대와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는 Zalpha세대(Z세대와 Alpha세대를 합친 합성어,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세대)의 중심에 있다. 그만큼 이들이 어떤 것에 반응하고 가치를 두는지 분석이 필요하다.

무지출 챌린지와 명품 오픈런

Z세대의 소비 패턴은 양극단으로 나뉜다. ‘무지출 챌린지’에 이어 최근에는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를 독려하고 감시(?)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거지방)이 화제가 되는 한편, 팬데믹 이후부터 지금까지 명품 브랜드 오픈런과 리셀 열풍을 주도한다. 무지출 챌린지나 자린고비 정신을 독려하는 거지방을 Z세대의 새로운 놀이문화로 보는 시선도 있다. TV나 유튜브에서 부캐를 만들어 인기몰이하듯, 불안한 경제 상황에 절약 정신과 약간의 유머 코드를 더해 자신만의 부캐를 만드는 것이다. 부캐를 통해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또 다른 나로 살아간다.

그런가 하면 국내외 명품 브랜드 소비를 주도하는 것도 Z세대다. 실생활 용품의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나에게 주는 선물을 사기 위해 작은 사치를 마다하지 않는다. 소비 여정은 SNS에 인증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테이크아웃 커피값을 아끼기 위해 회사 탕비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인증하는 Z세대와, 10만 원이 넘는 망고 빙수를 먹기 위해 고급 호텔을 방문하는 Z세대를 서로 다른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이는 한 사람에게 있는 다양한 페르소나(Persona)의 발현일 뿐이다.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소비하고, 자신의 취향과 신념을 SNS로 표현하는 Z세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Z세대 사이에서 유행한 카카오톡 그룹 채팅 ‘거지방’과 신라호텔 망고 빙수

(출처: (좌) 카카오톡 오픈 채팅, (우) 신라호텔 공식 홈페이지)

제품 이전에 브랜드 가치를 구매

한정판으로 출시된 콜라보 제품 구입을 위해 오픈런을 하고, 판매가를 훨씬 웃도는 리셀가를 지불하며 구매하는 일은 Z세대의 소비문화이자 하나의 재테크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브랜드는 희소한 제품에 브랜드 가치를 더해 소비자를 자극하고, 브랜드에 열광하게 만들어 팬덤을 형성한다. 루이비통과 나이키의 콜라보 제품인 ‘에어포스 1 로우 에디션’은 국내 리셀가가 3,000만 원까지 올랐고, 소더비 자선 경매로 판매한 200켤레 한정 제품은 최고 낙찰가가 4억이 넘기도 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가 만든 한정판 제품을 온라인 사이트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판매한 결과, 희소가치가 상승하며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아트 디렉터 버질 아블로의 유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루이비통과 나이키가 콜라보한 ‘에어포스 1 로우 에디션’

(출처: 소더비스 공식 홈페이지)

온라인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취향을 드러내는 Z세대가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직접 경험을 선호하는 것도 주목하자. 많은 브랜드가 온, 오프라인으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도록 팝업 스토어를 연다. 브랜드 경험의 허들을 낮추고 일정 기간 특별한 콘셉트의 공간에서 브랜드를 경험하게 한다. 젊은 세대의 유입이 많은 성수동은 수십 개의 브랜드가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거나 런칭 행사를 하는, 하루하루가 이벤트로 가득한 지역이 되었다.

온라인 플랫폼 29CM는 오프라인 공간인 ‘29성수’에 사이트의 한 섹션을 구현한 것처럼 제품을 큐레이션하고, 아티스트와의 콜라보 작품이나 컨셉추얼하게 만든 공간을 통해 브랜드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재정비 과정을 거쳐 새로운 콘셉트와 브랜드를 선보이는데, 이는 공간의 재방문율을 높여 지난 9월 이후 매월 2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등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정해진 기간만 운영되므로 희소성이 있어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오프라인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일정 기간마다 다른 컨셉으로 운영하는 29성수 쇼룸

(출처: 29CM 공식 인스타그램)

명품 브랜드가 팝업 스토어나 F&B 공간을 운영하는 이유 역시 허들을 낮추고 더 많은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기 위함이다. 디올 성수가 오픈한 당시 화제가 된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청담동이 아닌 요즘 소비자가 즐겨 찾는 성수동에 자리했다는 점이다. 찾아가는 서비스처럼 MZ세대의 놀이터로 들어와 허들을 낮추고 브랜드를 경험하게 했고, 팝업 스토어 내부보다 외부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성수동에서 들러야 하는 인증 장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디올의 국내 매출 성장세는 최근 5년 동안 10배 이상 상승했다. 오프라인에서의 다양한 시도로 접근성을 높이고, 새로운 소비 주체를 공략해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효과적인 마케팅 사례다.

성수동의 방문 인증 필수 코스가 된 디올 컨셉 스토어

(출처: 디올 공식 홈페이지)

이유 없이 지갑을 열지 않는 세대

Z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인터넷, 모바일 등의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자란 세대다. 이들에게 소셜 미디어는 정보 습득과 교류를 넘어, 취향이나 가치관을 표현하며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매체다. 자극적인 홍보 문구나 파격적인 가격 인하만으로 Z세대의 지갑을 열게 만들 수는 없다. 소비와 생활 전반에서 절대적 기준인 가성비를 외치던 시대에서 개인의 가심비를 충족시키고 흥미를 유발하는 것에 소비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브랜드는 Z세대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를 소비할 이유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변화하는 소비 문화에 대응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을 일치시켜 흥미를 끄는 콘텐츠를 만들어 제안하자. 온, 오프라인의 다양한 플랫폼으로 브랜드를 경험하고 자발적인 확산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정은아

네티션닷컴, 바바패션, FnC 코오롱 등 패션 브랜드 VMD(Visual Merchandiser)로 약 20년간 일했고, 현재 공간 기획 및 브랜딩 스튜디오 ‘아르젠트 에이 디자인(Argent a Design)’의 대표로서, 공간 기획과 더불어 소상공인 컨설팅 및 자문 등을 통해 현업에서 체득한 노하우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는 취향을 팝니다》(공저)와 <머물고 싶은 순간을 팝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