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_더 피커 대표

“탄소에는 가격이 매겨져야 한다.”

“기후변화는 곧 경제적 리스크다.”

세계경제포럼, COP26 등 국제행사를 통해 천명된 구호들이다. 과거엔 자본주의와 생태주의가 절대 화해할 수 없는 평행선 위에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위협 앞에 교집합이 만들어져 가고 있다. 지금은 아주 좁은 지대의 교집합이라도 그 관심도는 무척 뜨겁다.

많은 기업이 ‘제로 웨이스트’라는 키워드로 환경적인 성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형 유통 기업은 포장을 줄이거나 플라스틱 프리 제품을 늘려나가고, 친환경 브랜드들을 초빙하는 팝업들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뷰티 업계도 용기 수거와 재사용, 친환경 패키지 개발 및 채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친환경 소재나 시스템을 가진 스타트업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주목받으며 투자를 유치하고 수많은 대기업의 러브콜까지 받는 분위기다.

기업은 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해야 하고, 그것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까? 그러기 위해서는 제로 웨이스트의 세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생산자적 전환의 중요성

제로 웨이스트라고 하면 단순히 포장을 줄이거나 없애는 행위, 또는 플라스틱 프리의 개념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로 웨이스트는 생산, 유통, 판매, 사용, 폐기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품의 전 생애주기를 다루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만큼 환경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많은 지점이 존재한다. 이 사실은 제로 웨이스트의 주요 키로써, 소비자의 각성뿐만 아니라 생산자적 전환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기에서 ‘기업들의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전략적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생산이라는 키워드를 토대로 창출할 수 있는 환경적인 가치다. 제로 웨이스트는 ‘생산적인 전환’과 ‘생산 없는 자본 교환의 영역’ 두 가지에 주목할 수 있다. 전자는 현재 많은 기업이 관심을 두는 방향이다. 환경을 해치지 않으며 지속 가능한 소재로 제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일이다.

제로 웨이스트 온-오프라인 쇼핑 플랫폼 테라사이클의 루프 프로젝트 소개 페이지 (출처: 테라사이클 홈페이지)

생산자적 전환 영역의 주요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미국 기업 테라사이클은 ‘Loop’라는 제품 용기 재사용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소비자가 필요한 것을 루프에서 주문하면, 제품이 재활용 용기에 담겨 집에 배송된다. 제품을 사용한 뒤 포장 용기를 문 앞에 두면 루프는 용기를 수거해 세척 후 재사용한다. 이 서비스는 순환 인프라를 구축하며 전 세계 소매점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들의 참여 또한 용이하게 한다. 패스트푸드, F&B, 생활 화학제품 기업 등이 재사용할 수 있는 포장으로 교체해 참여하며, 강력한 임팩트를 만들어 가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 기업 MIWA의 디스펜서 사용 모습 (출처: MIWA 홈페이지)

체코의 제로 웨이스트 기업 ‘MIWA(Minimum Waste)’는 다양한 식품을 벌크로 보관해 소분 판매할 수 있는 디스펜서를 개발, 공급하는 기업이다. MIWA는 소분 판매와 관련한 여러 법적 제한을 돌파하기 위해 체코 상원 의회에 정책 토론을 제안했다. 정책 당사자, 기업, 소비자단체 등이 모여 거버넌스를 구축한 것이다. 제로 웨이스트 소비의 든든한 밑바탕이 되는 이 시스템은 좋은 반응을 얻어, 자국 시장뿐 아니라 인접 국가에도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위의 예시들처럼 제로 웨이스트를 하려 할 땐 단순히 친환경 소재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폐기물이 덜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인프라 교체를 위해 장기간의 준비 기간과 투자가 필요하며, 생분해 플라스틱, 재생 플라스틱, 포장 방법론 등 기술적인 개발과 적용에 크게 의존한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지형의 영향을 받기도 해 모든 생산자에게 용이한 형태가 아니라는 고려 사항이 진입장벽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조금 시야를 넓혀 탄소와 폐기물로부터 자유로운 시장에도 관심을 기울여 보기를 권한다. 바로 생산 없는 자본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이다.

생산 대신 리셀

최근 당근마켓, 중고나라, 번개장터 등 리유즈 마켓이 급성장했다. 국내에서는 기업 사례가 드물지만 리셀 시장도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 예로 해외에서 굉장히 큰 이목을 끌고 있는 ‘depop(디팝)’은 이미 Etsy(엣시)를 통해 인수되어 훌륭한 출구전략을 수행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Z세대를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고 거래 플랫폼 ‘디팝’ (출처: 디팝 홈페이지)

디팝은 리셀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중고 거래 플랫폼 중 하나다. 전 세계 150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디팝은 3,000여만 명의 이용자 중 90%가 Z세대이다. 요즘 세대는 중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없을뿐더러, 유니크한 아이템을 발견하고 소유하는 즐거움을 소중히 여긴다. 디팝은 그 두 가지의 니즈를 동시에 충족시킨다. 중고 거래를 통해 지구에 끼치는 영향을 줄이면서, 유니크한 사용자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생산에 모든 자본이 집중된 지금, 생산 시장 밖을 둘러보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생산과 관련해 다양한 규제 속에서 생존을 위한 자본주의와 생태주의 간의 교집합 지대는 여전히 좁고도 험난하다. 그러므로 생소하면서도 아주 오랜 역사가 이어져 온 지대, ‘리유즈-리페어’ 시장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현해 보면 어떨까? 생산자로서의 기업이 제로 웨이스트를 한다는 것은 소비자와 동일시될 수 없는 다른 영역임을 인지할 때 기업의 제로 웨이스트가 시작된다. 그 지점에서부터 놀라운 지속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은 단순히 도덕적 옳음이라는 명분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 위기 시대의 기업 생태계에서 생존력을 높임과 동시에, 미닝아웃 소비가 일상화된 소비층과 친밀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불어 ‘그린 스완’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지고 있다. 기후변화가 개인과 사회뿐만 아니라 금융에도 커다란 위기를 안길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에 이제 제로 웨이스트는 책무이자 역량의 문제다.


송경호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더 피커 대표. 2016년 국내 첫 제로 웨이스트 숍 사례 런칭을 시작으로 환경 관련 정책 자문위원, 기업/소비자/단체 대상 교육 및 컨설팅 등을 수행하고 있다. 사람과 물건이 서로를 소모하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서로를 공감하고 온전히 사용하는 사회를 꿈꾸며 제로 웨이스트를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