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_일본 유자베이스(UZABASE)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아마존이 2022년 연말쯤 오프라인 패션 매장인 ‘아마존 스타일(Amazon Style)’을 미국 LA에 오픈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아마존 스타일은 다른 패션 매장과 달리 품목당 단 하나의 샘플만 진열하고 있다. 고객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발견하면 QR 코드로 스캔한 후 입어보고 싶은 크기와 색상을 선택하여 ‘피팅룸으로 보내기’ 버튼을 클릭한다.


편하게 모든 옷을 둘러보고 피팅룸에 들어가면 자신이 보낸 상품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 다른 사이즈나 색상의 제품을 가지러 나올 필요도 없다. 피팅룸 안에 설치된 터치스크린으로 요청하면 몇 분 내로 받아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터치스크린에는 패션 큐레이터, 고객 피드백, 선호도 등을 고려하여 AI가 스타일을 제안해 주기도 한다. 마치 나만을 위한 옷장 즉, 퍼스널 쇼퍼 룸을 연상케한다.

패션의 새로운 부가가치, 개인화 (Personalization)

패션업계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생산에서 유통에 이르는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다채로운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프로스펙스는 2022년 상반기 중 스캐너를 통해 소비자의 발을 측정하고 최적의 제품을 추천하는 ‘스마트 핏’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LF가 운영하는 트라이본즈는 매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온라인에서 맞춤 셔츠를 제작해 주는 ‘셔츠 스펙터’를 운영한다. 도쿄 시부야의 파르코에 입점한 더 노스페이스 랩(The North face Lab)에서는 고기능 다운재킷의 맞춤형 주문 생산을 시작했다. 이미 잘 알려진 미국의 패션 구독 서비스인 렌트더런웨이와 스티치 픽스는 고객이 좋아할 만한 옷을 엄선해서 정기적으로 보내준다.

변화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핵심 키워드는 동일하다. 바로 ‘개인화’이다. 내 체형에 딱 맞는 나만의 옷을 만들어 주거나 아니면 내 취향을 저격한 옷을 골라준다. 비스포크라고도 불리는 맞춤 서비스는 많은 산업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패션이야말로 이 ‘맞춤’이라는 서비스가 중요한 가치가 되는 업계이다.

우리의 체형과 취향은 제각각인 반면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옷과 액세서리가 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어울리는 패션을 고르고 코디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누구나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혹은 중요한 미팅을 위해 몇 시간이고 발품을 팔며 옷을 구입하러 다닌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반면 ‘생산’이 패션업계에서 창출하는 가치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예쁜 옷을 만들어 파는 것은 이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3D 프린터로 집에서도 원하는 티셔츠를 개인이 만들 수 있는 시대이다. 이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내 시간을 아껴주면서 나만을 위한 패션, 나를 빛내줄 아이템을 찾아 주는 것이다.

개인화에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고객 하나하나를 위한 ‘나만의 패션’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답은 데이터다. 데이터를 얼마큼 많이 모으고 잘 분석하느냐는 소비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역량으로 직결된다. 스티치 픽스에는 100명이 넘는 데이터 분석가가 있으며, 넷플릭스에서 알고리즘 분석을 담당했던 책임자를 영입하는 등 데이터 관련 인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나이키가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로 유통 전략을 바꾼 이유 중 하나는 소비자 데이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최대의 온라인 패션몰인 조조타운(ZOZO TOWN)은 고객 데이터 수집에 열심인 기업 중 하나이다. 조조타운은 2017년, 착용 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것만으로 전신 사이즈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조조슈트(ZOZO SUIT)를 선보였다. 조조슈트 사업은 배송 지연 등의 이유로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사업을 중단하였다. 하지만 조조타운은 실패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객의 신체를 측정하는 디바이스 사업을 선보이고 있다. 2020년 이후 발 사이즈를 측정하는 조조매트(ZOZO MAT), 고객의 피부색을 진단하는 조조글라스(ZOZO GLASS), 손가락의 사이즈를 측정하는 조조매트 포 핸드(ZOZOMAT for Hands)를 연달아 출시하였다.

취향 데이터 + 신체 데이터 = 온라인 퍼스널 쇼퍼

조조타운이 신체 측정 디바이스 사업에 이토록 집요했던 이유는 이를 통해 축적한 소비자 데이터가 미래 전략에 기반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조조타운이 발표한 성장 전략의 핵심은 자사의 온라인 쇼핑 내역을 통해 이미 파악된 ‘고객 취향 데이터’에, 신체 사이즈 데이터를 더해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합한 패션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조조타운이든 다른 온라인 쇼핑몰이든 판매하는 제품은 사실 비슷하다. 제품으로 차별화가 어려운 의류 유통에서 퍼스널 쇼퍼와 같은 역할을 통해 확실한 팬층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조조타운이 수집한 데이터는 자사 고객에게 맞춤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조조타운은 한 발 더 나아가 디바이스를 통해 취득한 데이터를 다른 사업자들에게 판매한다. 예를 들어, 2020년 2월 말부터 무료로 배포한 조조매트는 개월 만에113만 명이 이용했다. 100만 명이 넘는 소비자의 발 모형과 사이즈 데이터가 쌓인 것으로 이는 신발 제조업체들에게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손 사이즈를 측정하는 디바이스는 주얼리 브랜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며, 의료기관 및 다이어트 업체로부터도 데이터 활용 관련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지금, 많은 산업에서 물리적인 제품이 아닌 서비스로 부가가치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 패션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패션의 가치 또한 생산에서 서비스로 옮겨 가는 중이다. 누가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할 것인가? 이를 위해 패션업계의 데이터 수집은 계속되고 있다.


정희선

일본의 경제정보 서비스 플랫폼인 유자베이스 (UZABASE)에서 비즈니스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한국에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책 <사지 않고 삽니다>와 <라이프 스타일 판매 중>을 출간하였고,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콘텐츠 플랫폼인 퍼블리(PUBLY), 매거진 패션 포스트 등에 트렌드 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미국 Indiana University의 MBA 과정에서 마케팅을 전공하였으며, 우리 생활에 밀접한 소비재와 리테일 산업을 주로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