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헌_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브랜드 심리학자
‘운’이라는 글자를 뒤집으면 ‘공’이 되는 것처럼, 운은 어디로 얼마나 튈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불확실성 덕에 새해가 되면 서로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모습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먼저 독자들에게 우주 행성과 같은 큰 공이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임인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사실 사람이 운을 쫓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기업들 역시 이런 심리를 알고 오래전부터 운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모션을 시행하고 있다. 마케팅 연구자들은 운을 이용한 프로모션이 잠재 고객의 관심을 끌며, 고객의 이탈을 방지해 충성 고객을 만드는 데 도움 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매년 약 5500만 명의 미국인이 경품 이벤트(sweepstakes)에 참여하고 있으며, 브랜드 SNS 방문자의 약 23%가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라 할 만큼 소비자는 운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1].
[1] “8 Ways to Use Sweepstakes in Your Marketing Campaigns” posted by Snipp, Oct 1, 2021. (https://www.snipp.com/blog/8-ways-to-use-sweepstakes-in-your-marketing-campaigns)
브랜드 SNS 방문자 23%, 이벤트 때문에 찾아와
그렇다면 소비자는 왜 ‘행운’을 테마로 한 프로모션(이하 행운 프로모션)에 열광하는 것일까? 소비자가 판단하는 프로모션의 기대 가치(expected value)가 높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며 기대하는 결과, 즉 기대 가치는 보상이 주는 효용(utility)과 보상이 발생할 확률(probability)의 곱으로 구해진다. 쉽게 말해, 효용이 큰 보상을 높은 확률로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할 때 매력적인 프로모션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행동의 결과가 랜덤하게 바뀌는 행운 프로모션의 경우 소비자가 인식하는 기대 가치가 일반 프로모션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소비자가 행운 프로모션에 기대하는 보상의 효용이 일반 프로모션에 비해 클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럭키백(lucky bag)에는 최소한 지불 가격 이상의 제품들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따라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프로모션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득템의 기회를 놓쳤다는 손실로 인식할 수 있다. 특히 수량, 기간, 공간 등을 한정하여 희소성을 자극하면 손해 본다는 인식은 더욱 커지게 된다.
최고의 결과에만 꽂힌다, 닻내림 효과
한편 행운 프로모션의 효용을 판단 과정에는 닻내림 효과(anchoring effect)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운에 따른 다양한 결과 중 최악보다는 최고의 보상에 닻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럭키백의 경우 자기가 원하는 고가의 물건이 가득 들어 있는 달콤한 상상을 하게 되어 프로모션의 기대 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행운 프로모션은 당첨 결과가 주는 직접적인 효용 이외에 참여 과정을 공유함으로써 얻는 간접적 효용도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거래(deal)를 찾아낸 소비자(deal-prone consumer)들이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소비자로 인식되고 남들에게 트렌디하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확률에 대한 착각 역시 행운 프로모션의 기대 가치를 높일 수 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이 가장 쉽게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로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을 주장한다. 이는 우리 머릿속에 구체적인 사례가 더 잘 떠오르는 경우 발생 확률이 높다고 착각하는 오류이다. 예를 들면, 비행기 사고보다 자동차 사고에 의한 사망률이 실제로는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대부분은 비행기 사고의 끔찍한 모습을 더 쉽게 떠올리고, 비행기의 사고 확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당첨된 사람만 눈에 띈다? 가용성 휴리스틱
브랜드의 행운 프로모션도 마찬가지. 당첨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는 당첨된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남기는 포스팅들에 더 자주 노출된다. 따라서 소비자는 자신이 당첨될 가능성을 높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특히 주변 지인의 당첨 사례는 오랫동안 강하게 각인되어 확률 추정을 왜곡시키는 가용성 휴리스틱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행운 프로모션의 가장 큰 특징인 불확실성 자체가 때론 재미를 주는 경험적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숙박 예약업체인 핫와이어(hotwire)는 결제 전까지는 어느 호텔인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초저가의 핫딜 상품 판매로 유명하다. 소비자는 제한된 정보들(숙박료, 호텔 등급, 대략의 위치)만을 가지고 결제를 해야 하는 모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핫와이어는 소비자가 이러한 모험을 재미가 아닌 위험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느 정도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즉, 어느 호텔인지를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힌트들(예, 3개의 후보 호텔들, 룸 사진)을 간혹 제공하기도 한다. 결제 버튼을 누른 후 내가 예상했던 호텔이 맞았을 때 느끼는 쾌감은 단순히 가격 할인을 받아 숙박시설을 예약했을 때와 비교하기 힘들다.
행운 마케팅을 위한 준비물
행운 프로모션은 소비자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지만 철저한 준비도 필요하다. 예상치 못한 수요로 대기 줄이 길어지고 서버가 마비된다거나 준비한 물량이 조기에 매진될 경우, 기대에 부푼 소비자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게 되어 브랜드 이미지에 독이 될 수 있다. 럭키박스 같은 랜덤 상품의 경우 타깃 소비자와 관련성 낮은 아이템을 다수 넣으면 가격 대비 비싼 아이템을 넣어도 소비자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추가적으로 행운 프로모션을 진행할 때는 이 프로모션에 참여하는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제시되면 유리하다. 이는 참여자들이 탈락자가 되더라도 프로모션에 참여한 자신의 행동을 쉽게 합리화함으로써 만족도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운 프로모션의 성공을 운에 맡겨서는 안 된다. 운이라는 말에는 통통 튀는 공이 아닌 또 하나의 ‘공(功)’인 노력이 숨겨져 있다. 2021년 3월 디지털 아티스트인 비플(beeple)의 “Everdays: The First 5000 days”라는 작품이 크리스티(Christie) 경매에서 무려 6,930만 달러(한화 약 850억)에 판매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비플이 잭폿을 터트린 행운의 사나이라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비플이 무려 14년 동안 매일 한 점씩 직접 그린 5,000개의 그림들을 이어 붙여서 만든 노력의 산물이었다. 물론 운칠기삼이란 말처럼 성공에는 운이 70%, 노력이 30% 기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순서이다. 노력을 하지 않고 행운만을 추종해서는 결코 성공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맹목적으로 행운을 쫓는다.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행운 프로모션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끝나는지도 모르겠다.
김지헌
KAIST 경영대학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KT마케팅 연구소와 CJ제일제당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심리학을 근간으로 브랜드 전략을 연구하며 그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우수 논문상과 우수 강의상을 수상하였다. 대표 저서로는 ‘마케팅 브레인(2021)’, ‘브랜드여행(2020),’ ‘디스이즈브랜딩(201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