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은_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

MZ 세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 패션 스토어 무신사. 올해 홍대 앞에 생긴 무신사의 첫 오프라인 매장은 일반적인 쇼핑 매장과 다르다. 시즌마다 작가와 협업해 꾸민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빈백이 배치된 루프탑에선 망중한을 보낼 수도 있다. 그 사이사이 옷을 입어보며 셀카 찍고 노는 것은 덤이다. 최근 넷플릭스가 코엑스몰에 만든 ‘지옥체험존’엔 드라마 ‘지옥’ 속 지옥사자들이 등장해 ‘지옥행 선고’를 내린다. 지옥사자들은 넷플릭스를 홍보하는 대신, ‘오늘의 지옥운세’를 뽑아 사람들에게 건넨다. 최근 주목받는 브랜드 공간들은, 브랜드를 홍보하는 대신 소비자가 브랜드와 만나는 시간을 새롭게 스타일링하고 있다.

쇼핑으로 힐링하다, 리테일 테라피

코로나로 침체된 오프라인 매장이 고객들에게 바라는 첫 번째는 방문이요, 두 번째는 체류이며, 세 번째는 공유·확산이다. 침대가 없는 침대 브랜드의 컨셉 스토어, 구매는 할 수 없고 체험만 할 수 있는 화장품 기업의 뷰티 라운지, 재활용 용기를 들고 가 직접 필요한 내용물을 채워오는 리필 스테이션 등 소문난 리테일 공간들은 상품이 아닌 색다른 경험을 팔며 위 세 가지를 만족시키고 있다.

색다른 체험이 있는 독특한 매장을 찾아가는 요즘 소비자들이 공간 마케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체험경제를 이끌고 있는 MZ 세대를 주축으로 ‘리테일 테라피(Retail Therapy)’가 인기다. ‘리테일 테라피’란 ‘유통공간’과 테라피’가 합쳐진 신조어로 쇼핑을 통해 힐링한다는 뜻이다. 일상의 힐링법이 된 리테일 테라피 덕에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매력적인 리테일 공간들이 주목받고 있다. 공간은 브랜드와 고객의 입체적인 만남을 성사시켜 주기 때문이다.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는 백화점 공간

오늘날 ‘리테일 테라피’를 선도하는 곳은 단연 백화점과 아울렛이다. 특히 현대백화점그룹의 ‘더현대 서울’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은 코로나를 뚫고 런칭에 성공해 오프라인 유통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대 분위기에 발맞추어 자연과 휴식을 콘셉트로 한 더현대 서울은 매장 면적을 줄이고 온전히 고객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전체 영업면적 가운데 매장 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51%로, 나머지 절반가량의 공간(49%)을 실내 조경이나 고객 휴식공간 등으로 꾸민 셈이다.

미술관과 공원의 문화ᆞ예술적 요소를 결합한 국내 첫 ‘갤러리형 아울렛’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도 눈에 띈다. 실내 정원도 조성해 두었고, 플랜테리어(식물+인테리어)로 유명한 카페 ‘마이알레’를 입점시키고 체험형 콘텐츠를 진행하는 커뮤니티룸을 마련하는 등 할인가 ‘득템’이 전부이던 아울렛을 쉬러 오는 공간으로 바꾸었다. ‘시간도 머물고 싶은 공간’이라는 콘셉트의 롯데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는 인근 바라산과 백운호수를 활용해 자연친화적 공간을 원 없이 연출했다. 특히 건물 내부 30m 높이의 유리 돔 천장을 통해 자연 채광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한 것이 백미다. 그뿐만 아니라 500평 규모의 잔디광장에서는 4계절 모두 피크닉이 가능하도록 한 ‘리테일 테라피’ 기획력을 자랑한다.

제주도에 문을 연 몰입형 브랜드 공간 ‘이매진드 랜드스케이프 제주(Imagined Landscape Jeju)’에는 대자연을 주제로 한 디지털 영상이 전시되어 자연 속 특별한 공간에서의 전이를 경험하게 해준다. 이 디지털 공간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선도하는 헤리티지 브랜드 버버리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버버리는 이 공간의 오픈 기념으로 창시자 ‘버버리 토마스’의 이름을 딴 ‘토마스 카페’를 마련했다. 버버리의 하우스 코드를 반영한 인테리어에 한남동의 유명 디저트 카페인 ‘JL 디저트 바’와의 협업으로 제주를 테마로 한 다채로운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이는 제주를 그리고 이 공간을 방문하고 체류해야 하는 확실한 명분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다.

우리 감각이 기억하는 공간, 공간의 힘을 활용하다

어떤 공간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 몸은 그 공간을 느끼는데 모든 감각을 사용한다 온도, 냄새, 소리, 공기의 촉감, 그리고 그 공간을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까지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말과 글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 느낌엔 실체가 있다. 공간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뇌리에 남는다. 실제로 그 공간의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 우리는 굿즈나 기념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공간이 주는 안식, 리테일 테라피다.

공간 경험은 개입도를 높이는 힘이 있다. 오프라인 매장의 변화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매력(魅力)이라는 한자의 ‘매(魅)’는 도깨비를 뜻한다. 사람을 홀리는 도깨비와 같은 마력, 그것이 매력이다. 사람을 홀려라. 공간은 충분히 그럴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향은

CX트렌드와 사용자심리를 연구하는 성신여자대학교 서비스디자인공학과 이향은 교수는 <트렌드코리아 2011>부터 <트렌드코리아 2022>까지 총 12권을 공동 집필했다.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 어워드 독일 iF Design Award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고객 및 사용자 관점의 DX(Digital Transformation)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강연을 통해 국내외 대기업들의 경영컨설팅과 자문, 혁신 제품 컨셉 개발과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