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를 보다 보면, 쓸데없이 나대는 사람이 꼭 등장합니다. ‘저러다 죽지’ 싶은 순간 예상한 대로 가장 먼저 스크린에서 퇴출당하죠. 재난 영화에서도 십중팔구는 다른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나오곤 합니다. 불치병이나 출생의 비밀은 멜로 드라마가 흔히 사용하는 단골 소재죠.

상투성을 가리키는 ‘클리셰(cliché)’가 영화나 드라마에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관계 속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존재합니다. 두뇌 구조 속에 꼼짝달싹하지 않고 틀어박혀 있는 클리셰 때문에 남들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을 ‘꼰대’라고 합니다. 권위적인 사고와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는 꼰대들은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영화 <벌새>에 등장하는 아버지처럼 꼰대에게 ‘세상의 질서’는 자신이 기준점입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꼰대’ 하면 나이든 사람들만 떠올렸지만, 요즘에는 ‘젊은 꼰대’라는 말처럼 나이와 관계없이 생각이 고루하고 편협한 사람들을 두루 포함합니다. 꼰대의 개념에서 나이가 빠지니 그것이 가리키는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아재’도 꼰대처럼 의미의 확장이 이뤄진 개념입니다.

국어사전은 아재가 아저씨의 낮춤말이라고 설명합니다. 허물없이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재 개그’가 회자되던 초창기만 해도 이 말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했습니다. 아재 개그는 곧 ‘노잼’을 의미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빵 터지는 아재 개그’나 ‘신박한 아재 개그’가 활발히 공유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재 개그 족보’, ‘올해의 아재 개그 총정리’ 같은 콘텐츠를 접하면 이제 아재 개그도 하나의 트렌디한 장르가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일반적으로 ‘세대’는 어린아이가 성장해서 사회 활동을 할 때까지 약 30년을 한 단위로 하는 연령층을 말하지만, 변화가 빠른 현대 사회에서는 세대를 구분하는 기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습니다. 각 세대는 겪어 온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세대 간 갈등이 초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른바 ‘세대 차이’죠. 세대 차이는 특정 세대에 대한 클리셰를 만들어 내곤 합니다. 일정한 역할을 강요하기도 하고 고정관념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예컨대 베이비부머 세대까지만 해도 남성은 경제 활동, 여성은 가사와 육아라는 역할 분담이 뚜렷했습니다.

이러한 세대에 대한 고정관념, 세대 차이가 함의하고 있는 내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문화를 중장년층이 향유하기도 하고, 기성 세대의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레트로 문화가 젊은 세대의 일상에 스며들기도 합니다.

희곡에서는 플롯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주인공이죠. 프로타고니스트와 대척되거나 갈등 관계를 빚는 주변 인물들이 안타고니스트(antagonist)입니다.

보살핌의 대상이었던 알파 세대가 유튜브로 인해 경제 활동의 주체가 되고, 손주를 돌보느라 황혼기를 희생했던 시니어들이 자아 탐색과 여가 활동을 위해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씁니다. 밀레니얼 대디는 가사 노동과 육아 분담을 위해 회사에 거침없이 휴직서를 냅니다. 예전에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죠. god의 노래 속에 등장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며 아이가 먹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봤지만, X세대 엄마들은 “나도 짜장면 좋아해”라고 말합니다.

나이와 세대를 가르고 있던 클리셰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안타고니스트에 머물렀던 세대들이 이제 프로타고니스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제일매거진 9월호에서는 세대 간 공통분모를 향유하거나 세대 간 문화가 트랜스되는 에이지리스 현상에 대해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