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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언컨텍트(Uncontact, 비대면)’ 트렌드에 대한 관심이 높다. 흔히 줄여서 ‘언택트’라고 말하는 언컨텍트 트렌드는 코로나19 때문에 갑자기 불거진 현상은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진행돼 오던 흐름에 코로나19가 트리거가 되면서 급속도로, 또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것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라이프스타일에 중요한 변화가 생길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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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배송의 속도 전쟁에서 비대면 옵션이 필수가 되고 있다. 이마트 쓱배송은 원래 소비자가 대면 배송, 문 앞 배송, 경비실 보관 등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기간 동안은 직접 전달하는 옵션은 선택할 수 없게 했다. 언컨택트 소비 경험을 더 늘려준 셈이다.
코로나19는 여러 이유로 마트에 직접 가서 장을 보던 중장년층조차 배달앱을 이용하게 만들었다. 배달 서비스의 편리성을 경험한 신규 유입 소비자들의 구매 행태를 과거 방식으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코로나19를 통해 배달 서비스 강화의 필요성을 각성한 기업들도 많다. 베이커리 브랜드 뚜레주르는 2019년 9월 처음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2020년 2월의 배달 서비스 매출이 9월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결과 앞에서 기업들은 판매 방식의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는 비대면으로 음식을 받는 안심·안전 배달 옵션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배달원이 문 앞에 음식을 놓고 전화로 도착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현장 결제도 줄이기 위해 배달앱에서 주문하면 선결제되는 비대면 결제 캠페인도 더불어 펼쳤다. 해외에선 비대면 음식 배달이 보편적이었지만, 그동안 우리는 정서상 직접 사람에게 음식을 건네는 서비스를 선호했었다. 그러나 눈에도 보이지 않는 미세한 존재가 우리 민족의 오래된 정서마저 단박에 깬 셈이다.
▲ 온라인을 통한 초저가 경쟁 대신 고품질 제품을 빠르게 배송한다는
콘셉트로 꾸준히 성장 중인 마켓컬리. ⓒ마켓컬리
코로나19는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소매 매장에 큰 타격을 줬다. 하지만 전 세계적 위기에도 슬기롭게 대처한 몇몇 기업이 있다. 던킨이 모든 매장을 정상 영업할 수 있었던 데는 결정적 이유가 있다. 바로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배달 서비스 등의 경쟁력 때문이다. 던킨은 패스트푸드 업계에서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 속도가 제일 빨랐다. 스마트오더를 확대시키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적극 투자했다. 이는 이미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다 이뤄진 일로, 그 덕분에 던킨이 위기에서 돋보인 기업이 된 것이다.
▲ 일찌감치 시행한 드라이브 스루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한
던킨 도너츠. ⓒdunkindonuts.com
던킨은 모바일 앱으로 스마트오더를 확대하며 고객 분석을 통한 빅데이터 활용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미래형 매장 구축에도 적극적이었다. 던킨이 다가올 언컨택트 환경에 미리 대비한 덕을 이번에 봤다면, 이는 다른 브랜드들도 이런 환경으로의 전환에 더 적극적일 명분을 준다. 스마트오더는 스타벅스가 가장 대표적인데, 덕분에 현금없는 매장이 만들어지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신제품 개발, 신규 매장 입지 선정 등도 하고 있다. 언컨택트의 핵심은 단지 소비자를 대면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활용의 기회를 늘리고 더 투명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마존은 2020년 2월 세계 최초의 무인 편의점인 기존 아마존고 매장보다 6배 정도 큰 슈퍼마켓 ‘아마존고 그로서리 스토어(Amazon Go Grocery store)’를 시애틀에 오픈했다. 아마존고의 26번째 매장인 이 슈퍼마켓은 채소, 육류, 해물, 베이커리, 유제품, 간편식, 주류 등 무려 5천여 종의 상품을 판매한다. 무인 매장을 편의점에서 슈퍼마켓으로 확장시킨 아마존은 그로서리 매장을 더욱 확대시킬 것이다.
편의점 규모에 이어 슈퍼마켓 규모까지 이상없이 운영되면 더 큰 매장으로까지 이어질 것이고, 결국 미국 전역의 슈퍼마켓과 대형 마트업계의 판도를 바꿀 날까지 올 것이다. 솔직히 아마존은 직접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것이 진짜 목적은 아닐 수 있다. 아마존은 무인 매장에서 자동으로 계산하는 기술인 ‘Just walk out technology by Amazon’을 외부로도 팔고 있다. 이 기술을 대형 월마트나 타깃 같은 유통업체를 비롯, 소매 결제가 이뤄지는 다양한 영역에 팔고자 한다. 그들의 그런 계획은 코로나19로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매장에 직접 가서 물건을 사는 고전적 구매 방식은 코로나19로 인해 이제 ‘불편’에 ‘불안’이란 인식까지 더해졌다. 오프라인 유통업계에겐 온라인 전환이 더 절박해졌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전환도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2019년 7월, 구찌는 iOS 앱에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한 신발 피팅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를 통해 자신이 구입한 신발과 패션 스타일을 맞춰보다 보니 모바일로 신발 사진만 보고 샀을 때와 달리 만족도가 높아져 반품이 줄어들었다. 이는 신발 외에도 옷, 색조 화장품, 가구 등의 구매에도 활용 가능한 기술이다.
이를 반영하듯 중국의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는 모두 VR, AR 커머스 시장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바이 플러스(Buy+)는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쇼핑하는데, 방 안에서 쇼핑하지만 마치 백화점 매장 안에서 쇼핑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물건을 골라서 집 안에 배치해 볼 수도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소비재와 유통업계에선 모두가 AR·VR을 통해 쇼핑에서의 소비자 경험을 높이는 데 적극적인데, 코로나19를 계기로 더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모바일 쇼핑과 달리 실제 착용의 경험을 통해 판단의 정확도를 가진다는 오프라인 쇼핑의 장점이 퇴색되고 있는 것이다.
https://youtube.com/watch?v=-HcKRBKlilg
▲ 가상현실 경험을 제공하는 알리바바의 바이 플러스.
중국의 온라인 쇼핑몰 징동닷컴은 2020년 2월부터 우한시에서 자율주행 배송 로봇 운영을 시작했다. 코로나19 발병지인 우한시에 자율주행 배송 로봇을 투입했는데, 600미터 정도 거리를 왕복하며 사람과 직접 접촉을 최소화한 채 물품을 배송한다. 자율주행 배송 로봇은 물품 배송을 하면서 시내 지도와 교통 데이터도 수집하며, 현장 테스트를 하기도 한다. 코로나19가 만든 위기를 자율주행 배송 로봇 테스트의 기회로 삼은 셈이다.
중국의 음식 배달 앱 메이투안 디엔핑 역시 베이징에서 자율주행차로 배달 서비스를 테스트했는데, 도로뿐 아니라 실내로도 이동하며 배달하는 로봇과 배달용 드론도 테스트했다. 이들 외에도 중국에선 온라인 쇼핑몰과 배달 앱에서 자율주행 배송 테스트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
이는 아마존, 월마트 등 유통업계가 그동안 계속 추진해 오던 방향이기도 하다. 한편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자율주행 자동차보다 규제가 덜한 자율주행 자전거, 인도를 느리게 가는 자율주행 로봇에 대한 투자도 계속돼 왔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그런 시도들이 더욱 늘고 있다. 방향은 이미 정해졌으니, 기업들이 속도를 내는 것이다.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다. <언컨택트(Uncontact)>, <라이프 트렌드 2020: 느슨한 연대>,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 대한민국 세대분석 보고서>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