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영국 밴드 버글스는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음반을 내놓았고, 퀸은 “Radio, someone still loves you”라고 노래했다. 이들의 노래처럼 청각 미디어인 오디오는 시각 미디어인 비디오에 밀려 빠르게 저물어 갔고, 레거시 미디어가 됐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아 오던 오디오가 반격을 시작하고 있다.
비디오 플랫폼이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2020년, 오디오가 신흥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한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늘 시간이 부족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멀티태스킹은 필수적인 능력이다. 기술의 발전은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오디오의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인공지능 스피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시스템 등 음성 인터페이스 기술이 보급됨에 따라, 음성 인식 소비 공간이 집과 차량 등 일상으로 넓어졌다. 또한 갤럭시 버즈나 에어팟 같은 히어러블(hear+wearable) 디바이스가 대중화됨에 따라 더 이상 선(wire)에 구애 받지 않는 자유로운 청취도 가능해졌다.
미국 에디슨연구소와 트라이튼 디지털의 공동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팟캐스트 청취자는 월간 7,300만 명(2018년 기준)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2013년 3,200만 명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며, 2022년에는 월간 1억 3,200만 명이 팟캐스트를 들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 오디오북 출판 협회(APA)에 따르면, 오디오북 시장 역시 매년 20%의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전체 출판사 매출의 10.5%를 차지하고 있다.
훌륭한 먹잇감을 놓칠 리 없는 IT 공룡들은 빠르게 오디오 콘텐츠 시장에 진출했다. 선두주자인 아마존은 출판사와 낭독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아마존 오더블(Amazon Audible)을 운영하고 있으며, 구글은 한국을 포함한 45개국에 오디오북 서비스를 출시한 후, 구글 홈(AI 스피커)과 구글 어시스턴트(AI 플랫폼)가 탑재된 기기에서 이용하게 하면서 서비스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네이버가 오디오 콘텐츠에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동영상 플랫폼의 유튜브 같은 절대 강자가 없다 보니 다양한 사업자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국내 오디오 콘텐츠 서비스들을 간단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 읽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으로, ‘네이버 오디오 클립’
‘오디오 클립’은 크게 오디오 방송인 ‘채널’과 성우나 배우가 책을 읽어주는 ‘오디오북’으로 나뉜다. 오디오 클립 오디오북은 유료 서비스로 출시한 지 1년 만에 월 2만 3,000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누적 사용자 수도 21만 명에 달한다. 성우뿐만 아니라 배우, 아이돌 등의 셀럽, 작가가 직접 낭독자로 참여한 것이 특징이다. 소설가 김영하가 직접 낭독한 <살인자의 기억법>, 배우 유인나의 <노인과 바다>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근에는 네이버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인 <공유의 베드타임 스토리>나 웹툰 원작의 오디오 드라마 <끊을 수 없는 나쁜 짓> 등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24시간 일상의 BGM ‘네이버 NOW’
네이버는 자체 어플 메인 화면에서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NOW’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라디오와 거의 유사하다. 24시간 내내 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내보내고 있기 때문에 BGM처럼 틀어놓고 검색, 쇼핑, 뉴스 등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들이 온디맨드 형식인 것과 달리 네이버 NOW는 지정된 제작자와의 협업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향후 중견 유튜버나 크리에이터들과 함께할 수 있는 콘텐츠도 모색 중이라고 한다.
ⓒ 네이버 NOW 앱 캡처
⦁ 국내 팟캐스트 시장을 선도하는 ‘팟빵’
국내에서 오디오 콘텐츠가 처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나는 꼼수다>의 팟캐스트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부터였다. 팟빵은 초창기 정치/시사 팟캐스트로 알려졌기에 주 이용자가 4059 남성이었으나, 최근에는 예능/교양 등 콘텐츠가 확대됨에 따라 이용자의 성 연령대가 다양해지고 있다. 신규 오리지널 팟캐스트 방송 확대를 위해 자체 녹음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으며 AI 스피커, 커넥티드카 등과 협업을 진행하면서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혀가는 중이다.
▲팟빵 오리지널 ES 콘텐츠 ⓒpodbbang.com
⦁ 10대 감성을 내세운 개인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라디오’
스푼 라디오는 오디오계의 유튜브, 아프리카TV로 불리는 개인 오디오 방송 플랫폼이다. 18~24세가 전체 이용자의 약 73%를 차지하고 있어 GenZ의 대표 오디오 플랫폼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1인 오디오 방송은 동영상 방송 대비 외모 부각이나 사생활 침해가 적고, 콘텐츠 제작 유통의 문턱이 낮아 샤이 관종 크리에이터들의 진입이 용이한 편이다. 크리에이터들은 청취자들의 인앱 결제를 통해 수입 창출이 가능한데, 그렇게 발생한 총매출액이 2019년 46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한편 청취자에게는 적극적인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해 최근에는 1천 만 다운로드를 돌파하기도 했다.
AI 스피커의 보급과 5G의 상용화에 따라 음성 명령 기반의 스마트홈 시대가 목전이다. 취향에 따라 일회적으로 소비하는 현재의 음성 콘텐츠 시장도 쌍방향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로 바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브랜드나 상품이 소비자와 음성으로 접촉하고 소통하는 방식도 구현될 것이며, 음성 스피커가 탑재되는 모든 디바이스가 뉴미디어로 활용될 것이다. 그로부터 파생될 오디오 콘텐츠의 시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기에, 앞으로도 지속될 오디오의 반격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