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영_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연구위원

2008년쯤, 한 아파트 브랜드와 연구과제를 수행할 때의 이야기다. 소비자에게 평면도를 제시할 때 너무 많은 선택지를 제안하면 안 된단다. 선택에 어려움을 느낀 소비자들이 대개 ‘다른 사람들은 어떤 평면도를 가장 많이 선택하는지’ 물어보고 대세에 따라 선택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2022년 또 다른 아파트 브랜드와 과제를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때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의 요구사항이 다양해진 까닭에 소비자에게 제시되는 아파트 평면도가 거의 100개쯤 되는 시대가 다가올 거라고 했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소비자의 니즈가 완전히 변했다.

그동안 우리는 평균 점수, 평균 나이, 평균 소득, 평균 수익률, 평균 체중 등 다양한 평균 개념을 자주 사용했다. 평균이란 지금까지 우리에게 하나의 기준 역할을 해왔다. 평균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평균을 넘으면 안심되고, 평균에 못 미치면 불안하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보편화되고 획일적인 집단교육체제가 등장하면서 집단을 하나의 동질적 니즈를 가진 개체로 취급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평균이 사라지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집단을 대표하는 평균값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이제까지 평균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무난한 상품, 보통의 의견, 정상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 더없이 독특한 상품이 선택받고, 극렬히 찬성하거나 극렬히 반대하는 의견으로 쪼개진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발표한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는 이처럼 시장이나 사회는 물론이고 개인의 삶과 가치관에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지던 ‘전형성’이 사라지는 현상을 가리켜 ‘평균 실종’ 트렌드라 명명한다.

양극을 달리는 트렌드

평균이 의미를 잃어가는 이유는 ‘양극화’ 때문이다. 대표적인 현상이 ‘경제적 양극화’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더 힘들어진다는 의미다. 이러한 경제적 양극화는 특히 코로나19를 겪는 사이 더욱 극심해졌다. 개인 차원에서의 양극화도 갈수록 심해진다. 불황형 소비인 ’짠테크‘ 열풍이 돌아오면서 대형마트에는 외식 대신 간편 식사류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반면, 10만 원짜리 호텔 빙수, 20만 원이 넘는 한우 오마카세도 동시에 인기를 얻는다. 산업도 양극화되고 있다. 예컨대, 요즘 소비자의 영상 시청 행태를 살펴보면, 1분이 채 되지 않는 영상으로 쉽고 빠르게 소비하는 ‘숏폼’ 콘텐츠와 10시간 이상 시청해야 하는 ‘롱폼’ 콘텐츠가 동시에 인기를 얻는다. B급 특유의 날 것의 매력으로 시청자를 붙잡는 ‘덜 메이드’ 영상과 전문 감독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제작한 ‘웰메이드’ 영상이 시장을 양분한다.

N개의 무한한 트렌드

평균이 실종되는 두 번째 배경은 개별값이 산재(散在)하는 ‘N극화’에서 찾을 수 있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이 산업을 이끌고 가며 개인 맞춤화가 보편화되는 것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는 타깃 맞춤형 광고를 진행한다. 반면 TV에서는 같은 시간, 같은 채널을 보고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똑같은 광고가 나온다. 이젠 전통 매체인 TV 플랫폼에서도 타깃 기반 광고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2022년 새롭게 등장한 ‘어드레서블(addressable) TV’는 IPTV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동일한 채널을 보더라도 골프를 좋아하는 시청자에게는 골프 제품 광고가,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금융상품 광고가 방영된다. 검색 기술 역시 그간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화 알고리즘 검색 기술로 고도화되고 있다. 네이버가 2021년 선보인 ‘스마트블록’은 AI가 검색하는 사람의 의도를 추측하는 기능이다. 가령, 검색하는 사람을 구분해 캠핑을 가보지 않은 사람과 캠핑을 자주 가는 사람이 ‘캠핑‘을 검색했을 때의 결과가 다르게 표시된다.

단 하나의 트렌드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단극화’ 역시 집단의 평균이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는 평균 실종을 보여준다. 단극화 현상을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역은 플랫폼 경제다. 국내에서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톡은 2022년 현재 한국인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앱이다. 동영상 플랫폼도 유튜브가 시장을 독점해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앱이 되었다.

모바일 앱 시장도 일명 ‘슈퍼 앱’이 시장을 휩쓴다. 슈퍼 앱은 하나의 앱에서 기본 기능 외에도 콘텐츠, 커뮤니케이션, 쇼핑, 투자 등 여러 생활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중고 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은 거주지 근처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주는 ‘당근알바’ 서비스부터, 취향 기반 모임을 연결하는 ‘남의집’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지역 생활 슈퍼 앱으로 성장하고 있다. 인테리어 관련 앱으로 시작한 오늘의 집은 라이프스타일 슈퍼 앱을 표방하며 브이로그, 문구 수집 등 콘텐츠 강화에 나섰다.

평균 실종 트렌드는 특정 타깃을 공략해야 하는 기업 및 기관에 더 이상 안전한 전략이란 없음을 시사한다. 이제까지 대다수의 기업은 대중 시장(mass-market)을 우선순위로 공략했다. 영어 단어 ‘mass’는 정확한 형체를 가지지 않는 하나의 큰 덩어리라는 의미로, 그만큼 대중 시장에서 대상은 뾰족하게 구체화하지 않은 ‘누구나’였다. 하지만 양극, N극, 다극의 사회에서 무난함, 적당함이라는 수식어는 실체 없는 허상일 확률이 높다. 더 이상 평균적인 무난한 생각, 평범한 상품, 괜찮은 서비스로는 두각을 나타낼 수 없다.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은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양극단의 방향성에서 한쪽으로 색깔을 확실히 하는 ‘양자택일’ 전략, 소수 집단(때로는 단 한 명)에 최적화된 효용을 제공하는 ‘초다극화 전략’, 마지막으로 경쟁자들이 모방할 수 없는 생태계(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승자독식’ 전략이다. 근본부터 바뀌고 있는 산업의 지형도에 맞춰, 각자의 핵심역량과 타깃을 분명히 한 새로운 전략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평범하면 죽는다. 특별해야 한다. 평균을 뛰어넘는 남다른 치열함으로 새로 무장할 때 불황으로 침체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전미영

2009년부터 『트렌드코리아』 시리즈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트렌드차이나』, 『나를 돌파하는 힘』을 공저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리서치 애널리스트와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롯데쇼핑 ESG위원회 위원장, LG유플러스 MZ세대 자문단 자문위원, 국토교통부 정책홍보 자문위원, 교보문고 북멘토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다수 기업과 소비 트렌드 기반 신제품 개발 및 미래전략 발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