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혜 연구위원(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지난 1월, 한 편의점에서 출시한 도시락이 화제다. 이름하여 ‘저속노화 간편식’. ‘이 시대의 건강 전도사’로 알려진 서울 아산병원 정희원 교수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도시락은 백미 대신 렌틸콩을 섞은 잡곡밥에 닭가슴살 토핑을 더한 건강식이다. 기존의 기름지고 짠 편의점 식품을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출시하자마자 품절 사태를 빚었다.

최근 노화를 늦추는 생활 습관을 의미하는 ‘저속노화’ 열풍이 심상치 않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트렌드가 고령자가 아닌 2030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당뇨 환자들이 주의하던 혈당을 스스로 측정하며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식후에는 혈당 상승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명 ‘애사비(애플 사이다 비니거)’라 불리는 사과식초 한 스푼을 챙겨 먹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저속노화 라이프’를 실천했다는 후기가 쏟아지고, 자신들의 식단 레시피를 공유하며 서로 독려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처럼 비교적 젊은 나이인 2030세대부터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얼리케어족’이 늘고 있다. 최근 국내 조사업체 엠브레인이 전국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젊은 나이부터 웰에이징(Well-aging)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나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71.2%에 달했는데, 이는 2016년에 비해 더욱 증가한 결과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웰니스(Wellness) 시장’이 약 48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며 매년 5~10%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데, 특히 Z세대와 밀레니얼 소비자들 사이에서 웰니스를 일상에서 중요한 우선순위로 여기고 있으며, 이들은 기성세대보다 더 많은 웰니스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피트니스나 외모 뿐 아니라, 수면, 영양, 정신건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얼리케어 신드롬’은 오늘날 2030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을까?

오늘날 2030세대에게 자기관리란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는 여정이다. 아름답게 가꿔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스스로 건강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만족을 위한 관리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른바 ‘추구미(추구하는 아름다움)’라는 신조어에서 잘 드러난다. ‘롤모델’이 동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다 지향하는 일반화된 워너비를 의미했다면, ‘추구미’는 각자가 이상형을 정의하고 따르는 개인화된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추구미를 지향하는 이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개조하는 듯한 극적인 변화보다는, 매일매일 조금씩 자신을 가꾸며 발전하는 생활 속 작은 루틴에 주목한다.

일례로, 요즘 유튜브에서는 피부는 물론이고 두피·머릿결·바디·체취 관리까지 모두 아우르는 ‘나이트 케어 루틴’이 인기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기 전 시간을 활용해 자신을 관리하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관련 콘텐츠도 증가하는 추세다. 영상에서는 추천할 제품과 함께 단계별 사용 방법을 소개하는데, 최근에는 관리의 영역이 얼굴에서 두피와 바디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기, 가벼운 스트레칭 하기, 영양제 챙겨 먹기 등 아침마다 실천하는 ‘모닝 루틴’도 SNS에서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괄사’의 인기도 주목할 만하다. ‘괄사’는 두피·얼굴·팔·목·다리 등 신체 여러 부위를 적당한 압력으로 마사지해 혈액 순환과 부기 제거를 돕는 기구인데, 짧은 시간을 들여 수시로 관리가 가능하고, 즉각적인 부기 제거 효과를 볼 수 있어 2030세대의 루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최근 틱톡에서는 ‘#guasha(괄사)’ 해시태그로 업로드되는 게시물의 조회 수가 몇 백만 회에서 많게는 수천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젊을 때부터 조금씩 관리해 노화를 늦추려는 요즘 뷰티 트렌드를 잘 반영하는 사례다.

한편 최근 미국에서도 ‘갓생(God+生)’을 살고 싶은 2030세대 사이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기, 침구 정리하기, 핸드폰 멀리하기, 물 한 잔 마시기 등을 실천하는 ‘댓 걸 루틴(That Girl Routine)’이 화제다. 또한, 깨끗한 피부와 건강미 넘치는 몸을 가꾸기 위해 스킨케어·식단·운동 등 철저한 자기관리를 실천하며, 미니멀하면서도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클린 걸 에스테틱(Clean Girl Aesthetic)’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젊음을 만끽해야 할 2030세대가 셀프케어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HLY(Healthy Life Years)’라 불리는 건강수명의 개념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넘어서 건강하게 활동하며 살고자 하는 욕구가 증가하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건강수명을 최대한으로 연장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뷰티 전문 소비자 조사기관 TBC가 2024년 초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Z세대(1995년생~2009년생) 응답자의 58%가 “23세부터 노화를 우려하기 시작했다”고 응답했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 응답자가 답한 35세보다 약 12년이나 빠른 결과였다.

둘째로, 요즘 2030세대가 건강과 자기관리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과거에는 건강한 삶이 ‘지금 이 순간의 쾌락과 즐거움은 다소 절제하고 포기하는 삶’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이에 오늘날에는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20대 젊은 나이 때부터 열심히 스스로를 관리하는 움직임으로 변모하고 있다. 즉,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고진감래형 건강관리가 아닌, 과정과 결과가 모두 즐거운 건강관리법이 대세가 되면서, 이를 지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장에서도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과 서비스가 돋보인다. 대표적으로 뷰티 업계에서는 다양한 퍼스널 컨설팅이 등장하고 있다. 피부에 맞는 색채를 제안해 주는 퍼스널 컬러 진단 이외에도, 얼굴형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헤어스타일을 찾아주는 ‘헤어 컨설팅’, 체형을 진단해 주고 그에 어울리는 패션을 제안하는 ‘스타일 컨설팅’, 골격을 분석해 건강관리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골격 분석 코칭’ 등 다양한 컨설팅이 꾸준한 인기를 보이고 있다.

그 밖에도 혁신 기술들을 활용해 맞춤화된 셀프케어 제품 및 서비스가 출시되는 모습이다. 24시간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해주는 스마트 반지 ‘갤럭시 링’이 대표적인 예다. 이 반지는 손가락에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심박수, 혈압, 산소포화도, 수면 품질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해주고 누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에 맞춘 건강 가이드까지 제공한다.

이뿐만 아니다. 침대 브랜드 ‘슬립 넘버’는 개인의 수면 상태를 분석해주는 스마트 침대를 출시했는데, 내장된 센서로 심박수, 호흡 속도, 신체 움직임 등 사용자의 전반적인 수면 상태를 진단하고, 나아가 더 나은 수면을 위한 맞춤형 솔루션도 제시해 줘 인기를 끌었다. 한편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각자 타고난 유전적 특성을 정확히 알고 보다 건강한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모바일 헬스케어 플랫폼도 등장했다. 검사 결과를 통해 자신의 몸을 분석해 부족한 영양소와 발병 가능성이 높은 질병을 미리 파악하고, 이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신체를 관리하는 식이다.

이제 셀프케어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최근에는 뷰티와 신체건강을 넘어 정신건강 역시 중요한 셀프케어 분야로 진화하고 있는데, 명상을 실천하는 것을 넘어서 뇌과학이나 철학 분야를 공부하며 멘탈을 관리하는 등 다양한 셀프케어 방식들이 속속 등장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은 가장 나답게 성장하고 늙기 위해 자기관리를 행한다는 점이다. 나를 알고,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꾸준히 스스로를 관리하는 2030세대의 변화에 주목해야 할 때다.


한다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 서울대 심리학 학사, 서울대 소비자학 석·박사.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와 <스물하나, 서른아홉>,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 vol.2> 등 저서 집필에 참여했으며, 삼성·SK·LG 등 기업을 대상으로 소비트렌드 기반 미래전략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KBS1 라디오 성공예감 트렌드 팔로우 코너에 출연하며 다양한 기업에서 트렌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