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이름에서 따온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는 개념이 있다. 던바는 뇌의 크기와 영장류 집단의 규모를 연구하면서 “한 개체의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집단의 규모에 한계가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 연구를 통해 추정한 인간의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 정도다. 즉,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는 150명 정도라는 얘기다.
흥미롭게도 ‘던바의 수’를 지지하는 증거가 상당히 많다. 신석기 시대 수렵 채집 공동체의 인구는 150명 정도였다. 던바가 인구 기록을 구할 수 있는 20개 원주민 부족의 규모를 확인했더니, 인구가 평균 153명이었다. 공교롭게도 던바의 고향인 시골 마을의 평균 인구도 150명이었다.
‘던바의 수’가 유명해지자 미국, 오스트리아 등의 과학자들이 함께 온라인 게임의 가상공간에서 게임 참여자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연구했다. 이들은 3년 6개월에 걸쳐 게임 참여자 사이에 나타나는 동맹, 제휴, 거래, 경쟁 등의 인간관계 기록을 검토했다. 흥미롭게도 동맹의 크기에 상한선이 없었는데도 가장 큰 동맹의 구성원이 136명을 넘는 경우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 때문에 몇 달째 전 세계가 야단법석이다. 특히 어버이날 요양 시설의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한 안타까운 사정을 뉴스로 접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아직까지 예방 접종에 필요한 백신도, 바이러스를 제압할 치료제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뿐이어서 생긴 일이다.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도 적다. 국내 유행이 잠잠해질 만하면 다시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있다. 설사 지금의 유행이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가을과 겨울에 두 번째 유행이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코로나 유행이 끝날 때까지 일상생활에서 바이러스 감염을 걱정하면서 살아야 한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다수의 과학자는 코로나19 유행이 가까스로 잡히고 나서도 조만간 새로운 신종 바이러스가 다시 인류를 공격할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21세기 들어서만 거의 6년 주기로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난 사실을 염두에 두면 걱정 많은 과학자들의 기우라고 무시할 일도 아니다. 정말로 ‘코로나’가 등장할 수도 있고,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나타날 수도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서글퍼진다. 유행 때문에 보고 싶은 사람을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는 상황은 얼마나 슬픈가? 더구나 이런 일이 예외 상황이 아니라 ‘새로운 정상 상태’가 된다면 정말로 답답한 일이다. 그렇다면 전염병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평소 친하게 지내온 또래 작가는 코로나19 유행 이후에 외부 활동을 최소화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사람 만나는 일도 대폭 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 이런 우선순위를 정했다고 덧붙였다.
“사람을 만나야 할 때 곰곰이 생각해 봐요. 혹시 내가 이 사람을 만나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아니면 오히려 그 사람을 걱정할지.”
그의 답변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앞에서 언급한 던바의 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평소 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의 수백 명, 수천 명이 넘는 네트워크까지 염두에 두면 이 관계는 많다 못해 넘치는 상황이다.
이렇게 넘치는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관계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관계 가운데 굳이 대면하며 교제해야 할 관계는 또 어느 정도나 될까? 우리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오히려 챙기고 아껴야 할 진정 소중한 관계를 소홀히 해 온 것은 아닐까? 이렇게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전염병 시대는 우리가 맺어온 수많은 관계를 다시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참에 시간을 내서 주소록의 수많은 연락처를 가만히 살펴보자. 그중 대면해서 혹시 전염되더라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게 될 사람은 대체 몇 명이나 될까.
*강양구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보도로 앰네스티언론상과 녹색언론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시민이 꼭 알아야 할 지식을 정리해 전달하는 ‘지식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과학의 품격』,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