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화 오오비컴퍼니 기획자
내가 좋아했던, 또는 좋아하는 아이돌은 몇 세대일까? 아이돌 앞에 붙는 N세대라는 수식어는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다수의 동의 하에 암묵적으로 데뷔 연도에 따라 구분된다. 이른바 아이돌 세대론을 따르면 현재 케이팝 시장은 어느덧 5세대 아이돌(2023년 이후 데뷔)의 중반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세대가 발전함에 따라 아이돌 시장에선 음원만이 아닌, 차별화된 마케팅이 흥행의 무기로 자리 잡고 있다. 치열한 시장인 만큼 마케팅 역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독특함으로 무장한 K팝 아이돌 마케팅 사례를 통해 나만의 아이디어를 떠올려 보자.
앨범을 들으려고 사나요? 갖고 싶어서 사는 거지!
음반이라면 과거 케이스 속에 CD가 있는 형태를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최근엔 디지털을 통한 음원 청취가 일반화됨에 따라 음반도 실용적이고 이색적인 형태의 굿즈로 바뀌고 있다.
대표적으로 NFC 기능을 활용한 ‘스마트 앨범’이 있다. 실물 CD 없이 NFC 종이를 스캔하면 음원 청취 앱으로 이동하며, 미공개 이미지와 함께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실제 제품의 오리지널리티에 온라인 콘텐츠를 더한 셈. SM 아티스트들의 기본 발매 앨범 종류 중 하나인 ‘SMini’가 그 예로, 작은 CD 형태의 키링이기에 액세서리로서 인기를 끌고 있다.

키링 형태의 앨범인 SM 엔테테인먼트의 SMini’ (출처: SM ENTERTAINMENT)
앨범 자체가 CD 플레이어라고?
동그란 CD가 돌아가며 음악이 나오는 CDP가 MZ 세대에겐 낯설고 빈티지한 제품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렇기에 앨범 자체가 CDP인 제품도 등장해다. 에스파의 정규 1집 아마겟돈 CDP 버전은 아이리버가 만든 실제 CDP이며, 블루투스 기능을 탑재해 팬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CDP를 포함한 에스파의 앨범과, MP3 플레이어를 포함한 엔믹스 앨범 (출처: 각각 SM ENTERTAINMENT, JYP ENTERTAINMENT)
이 외에도 엔믹스의 4집의 ‘SHELL.ver’은 조개(shell)란 이름처럼 조개 모양의 레트로 디자인 MP3 플레이어를 포함한 앨범이다. 실제 음원은 음원 사이트에서 스트리밍하고 해당 MP3는 액세서리로 들고 다닌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
어른 세대에게 충격적인 사실은 이 MP3 플레이어마저 한 번도 안 써봐서 신기해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엔믹스 MP3, 위아래로 열리나요? 밖에 화면이 없는 것 같아서 안 열리면 어떤 방식으로 곡을 넣어야 할까요? MP3 써본 적 없는 세대라…” CD를 듣지 않는 요즘, 앨범 이상의 가치를 담아 실용적인 굿즈로 소비하게끔 만드는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있다.
내돌 소속사 일 잘하는 것 좀 보세요! 감다살 프로모션
아이돌 마케팅에 굿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선한 컨셉의 프로모션 역시 팬과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의 신규 걸그룹 키키(KiiiKiii)의 데뷔 프로모션은 이른바 ‘감다살(감 다 살았네)’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컴백을 앞두고 공개한 공식 웹사이트는 흡사 미국 어느 잼(jam) 공장 홈페이지 모습이다. 하지만 사이트를 뒤져 보면, 비하인드 미공개 이미지, 캐릭터 옷 입히기 게임 등 여러 힌트와 정보를 숨겨두어 찾아보는 재미를 더했다. 또한 소셜 매거진을 통한 바이럴을 진행하였는데, 각종 굿즈를 ‘키키박스’로 만들어 인비테이션 형식으로 전달해 팬덤의 눈길을 끌었다.


외국 잼 회사의 홈페이지를 닮은 키키 웹페이지 (출처: 키키 웹페이지)
서울 곳곳을 누비는 소원 배달부
한편 배달부 컨셉의 아이돌 프로모션도 있었다. NCT WISH는 싱글 앨범 ‘Songbird’ 발매에 맞춰 배달부 컨셉의 ‘Songbird Express’ 캠페인을 진행했다. 소원 배달부 NCT WISH가 세상의 모든 소원을 이뤄주겠다는 콘셉트로, 굿즈를 실은 트럭이 서울 시내를 누볐다. 트럭이 멈추는 곳 위치를 유추할 수 있는 힌트를 택배 도착 문자처럼 발행했고, 실제로 해당 지역에서 굿즈를 나눠주는 등 유기적인 프로모션으로 크게 바이럴이 됐던 사례다.

택배 배달 컨셉으로 실제 선물을 배달해 준 NCT WISH 프로모션 (출처: NCT WISH 공식 인스타그램)
IP를 활용한 체험 프로모션 역시 인기다.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는 버추얼(가상)임에도 불구하고 홀로그램 장치를 통해 팬이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을 만들었고, 스포티파이가 진행한 세븐틴 팝업 캐럿 스테이션에서는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문화에 착안해, ‘싱어롱 열차’를 운영하기도 했다.

팬들이 함께 가상 열차에 탑승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세븐틴 팝업 캐럿 스테이션 (출처: 스포티파이 공식 인스타그램)
지금까지 소개한 사례를 바탕으로, 팬덤에게 사랑받는 마케팅을 위해 알아 둘 사항을 소개한다. 아이돌과 콜라보 마케팅을 기획하는 이들이라면 염두에 두자.
Point 1. 아이돌의 스토리에 과몰입해 보자.
아이돌 문화에는 멤버별 세계관, 멤버들 사이의 관계성 등 서사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 이러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짜는 게 중요하다. 각 멤버별 상징색이나 상징 아이템을 익히는 것을 시작으로, 소통 앱, 자체 콘텐츠, 데뷔전 세계관 영상을 통해 그룹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우선 되어야 한다.
Point 2. 무조건 소비는 NO, 합리적인 소비자라는 것을 기억하자.
팬들에게는 각자의 ‘최애(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존재하고, 최애 위주의 소비가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예시가 ‘분철 문화’다. 보통 앨범 속엔 아이돌의 포토카드가 있는데 어떤 멤버인지 랜덤인 경우가 많다. 내 최애의 포토카드를 갖기 위해, 각 멤버를 최애로 두고 있는 팬들을 모집해 한 명이 대량 구매를 하고, 앨범 개봉 후에 나눠 갖곤 한다. 본인이 원하는 멤버의 굿즈를 사기 위해 많은 정성을 들이는 만큼 이런 성향을 반영한 아이템 구성이 필요하다.
Point 3. 팬메이드 콘텐츠를 놓치지 말고 주목하자.
팬덤 주 활동 채널인 X(구 트위터)에는 아티스트의 콘텐츠가 올라왔을 때 빠르게 편집해서 올리는 ‘네임드(named, 팔로워를 많이 보유한 유명한 팬)계정’이 존재한다. 또한 팬 브이로그, 앨범 개봉 영상 등 본인의 덕질 생활을 자발적으로 기록하며 콘텐츠화하는 계정도 흔하다. 이러한 콘텐츠로 인해 팬을 덕질하는 팬이 생기기도 한다. 이들 팬메이드 콘텐츠를 보면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아이돌 팬덤은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주체적인 소비자로 자리잡았다. 그렇기에 이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진행할 땐 팬덤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하다. 아티스트와 팬덤을 세심하게 이해한다는 느낌 줄 땐 좋은 피드백이 돌아온다. 만족시키긴 쉽지 않지만, 한번 마음에 들면 전력을 다해 바이럴에 나서는 팬덤. 팬들을 아군으로 만들어 효과적인 성과를 내보길 기대한다.
황정화 오오비컴퍼니 기획자
마케팅 에이전시 오오비컴퍼니 기획자. “아이돌이 밥 먹여주냐”라는 질문에 “그렇던데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몸 속에 핑크 블러드가 흐르는 아이돌 덕후. 가장 좋아하고 잘 아는 분야에서 다양한 브랜드와 함께 아이돌 마케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스포티파이의 아티스트 협업 IMC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해왔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낙원상가에서 진행한 ‘뉴진스 버니랜드 팝업’, 콘서트 가기 전 들르는 환승역 컨셉의 ‘세븐틴 캐럿 스테이션 팝업’ 등이 있다. 이외에도 아티스트 앨범 발매에 따른 디지털 영상 제작, 앱 연계 이벤트, 소셜 콘텐츠 제작 등 아이돌 특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