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화_동덕여자대학교 국제경영학과 교수

팬데믹 위기 속에서 명품업계의 빠른 회복세가 두드러진다. 최근 발표된 유로모니터의 보고서에 의하면 2021년 글로벌 럭셔리 시장 규모는 약 3천5백억 달러로 전년 대비 13.3% 증가했다. 7번째로 큰 시장인 한국은 2020년 세계 시장이 급격히 축소되었을 때도 큰 변동 없이 꾸준히 성장하는 저력을 보였다.

지금의 상황은 20여 년 전 명품 열풍과 비견될 만하다.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억눌린 소비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하였고,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대거 진입하면서 시장이 급성장했다. 20년 전 명품 붐의 주역은 상위 중산층, 新부유층이었다. 호기를 맞은 명품업체는 세컨드 브랜드를 공격적으로 출시하는 등 대중적인 고급품, 매스티지(mass-tige) 시장을 공략하며 저변을 확대했다.

오늘날 명품시장은 MZ 세대가 주도한다. 2030 세대가 백화점 명품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30% 미만에서 2020년 50%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또 20년 전에는 명품 열풍과 함께 짝퉁이 성행했다면, 지금은 중고시장이 급부상 중이다. 명품의 투자가치가 높아지고 중고라도 진품을 구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MZ 세대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매년 명품시장 보고서를 발표하는 베인앤드컴퍼니도  현재 명품 붐의 특성으로 젊어진 시장과 리세일 시장의 성장으로 꼽는다. 그렇다면 명품 브랜드가 MZ 세대 소비자의 사랑을 받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크게 3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가성비 아닌 가심비, 과시 아닌 취향

첫째, 고가와 희소성이라는 명품 본연의 매력을 극대화해 젊은 층의 쟁취 욕구를 자극한다. 미래보다 현재의 만족을, 객관적 가치보다 자신의 취향을 중시하는 이들은 크고 작든 원하는 상품을 확보하는 데서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극히 제한된 수량의 제품을 한시적으로 판매하는 등 접근성을 차단하고 희소성을 강조할수록 구매 경쟁이 치열해지고 욕구는 더욱 커진다.

슈프림, 버버리, 구찌 등은 극소수 매장에서 정해진 시간에 적은 수량의 신제품을 드롭(drop)하거나 추첨을 통해 응모 당첨자에게 구매 권리를 부여하는 ‘래플(raffle) 전략’을 펼친다. 상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들이는 비용과 노력이 커지면 ‘득템’의 희열과 행복감이 높아진다. 구하기 어려운 제품은 수십 배 비싼 가격으로 재판매가 가능해 훌륭한 재테크 수단이기도 하다. 실제 상품을 사용하면서 그 가치를 경험하는 것보다 획득과 처분 과정의 가치가 강조되어 고객 가치사슬의 스마일 커브가 만들어진다.

기성세대가 명품을 통해 자신의 계층을 표현하는 과시적 목적을 중시했다면, MZ 세대는 독특함(uniqueness)을 추구한다. 명품은 단지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가 아닌, 다르고 새로운 것으로 해석된다. 젊은 명품 소비자는 대중이 동경하는 특정 그룹으로 구분되기보다 자기 자신이기를 원한다. 희소한 고가 상품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스노비즘(snobbism)과 함께 남과 다름을 추구하며 타인의 평가보다 자기만족을 중시하는 힙스터리즘(hipsterism)의 양면성이 공존하는 셈이다.

MZ 세대는 패션, 인테리어 등 일상생활 속에서 중저가와 최고급 제품, 새것과 중고품을 함께 사용하는 믹스앤매치(mix and match) 소비도 즐긴다. 성별, 연령대, 직업, 상황 등에 따라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는 이전 세대와 달리 지금의 젊은 층은 정해진 답과 획일성을 거부한다. 서민적 취향, 반사회적 요소를 더한 상품을 선보이는 명품업체의 전략은 새로운 경험, 독특성을 추구하는 젊은 소비층의 호응을 얻어 트리클 라운드(trickle-round) 현상을 만든다.

‘명품이 이래도 돼?’ 명품의 변신이 주는 신선함

둘째는 의외성이 주는 신선함이다. 다양한 산업 분야의 대형 브랜드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생 브랜드에 맞서 디지털 전환과 함께 고정관념을 깨는 과감한 모험을 시도 중이다. 상대적으로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노쇠한 이미지가 강한 정통 명품업체들도 최근 대대적으로 변신했다. 기성세대에게 명품의 가치는 100년을 넘게 지켜온 전통과 유산, 변함없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함이 젊은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고객에게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주는 ‘Surprise and Delight’ 전략은 진부함에서 벗어나 활력과 젊음을 되찾기 위한 시도로 효과적이다. 특히 대조적인 콘셉트를 결합하는 콜라보레이션은 즐거운 경험을 추구하는 젊은 층의 이목을 끈다. 이색 콜라보레이션의 시작은 2004년 이루어진 H&M과 샤넬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패스트패션 브랜드와 세계 최고 디자이너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명품업체가 브랜드를 동경하는 잠재 고객과 정서적으로 연결되고 친근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라거펠트는 제품 태그에 “이 옷을 디자인할 때 내가 느낀 즐거움을 당신도 지금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문구를 써넣어 젊은 층을 향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후 우아하고 섬세한 명품 브랜드가 거친 이미지의 스트리트 패션, 투박한 디자인의 중저가 제품과 만나는 역발상적인 조화가 이어졌다. 크룩스 슬리퍼에 높은 힐을 불인 발렌시아가 구두는 100만 원 가까운 비싼 가격에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구찌와 발렌시아가는 서로 로고를 모방한 제품으로 진품과 위조품의 경계를 위트 있게 표현한 해커(hacker) 프로젝트를 벌여 주목받기도 했다. BCG 조사에 의하면 명품시장에서 밀레니얼 소비자의 60%가 콜라보레이션 명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해 베이비부머 20%와 큰 차이를 보였다.

사회적 가치까지 끌어안은 명품 브랜드

마지막은 사회적 책임을 의식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의 변신이다. 순수 예술, 고급 스포츠 후원 등에 한정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 명품업체는 지속 가능 경영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2017년 구찌가 동물복지, 생명윤리 차원에서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한 이후 버버리, 아르마니 등이 연이어 모피 사용 중단 계획을 발표했다. 모피의류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인식되어 4대 패션위크에서도 사라지는 중이다. 소재로 사용하는 가죽이나 금의 이동 동선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생산방식을 개선하며 에너지와 폐기물을 절감하는 노력도 기울인다. 성 평등, 노동자 복지 등을 추구하는 포용적 경영에 동참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의 조사에서는 젊은 층의 62%가 명품을 구매할 때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한다고 답했다. 주목할 점은 한국의 경우 그 비중이 81%에 달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MZ 세대는 기업의 진정성을 중시할 뿐 아니라 자신의 관심과 참여로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명품업체의 적극적인 환경친화적 경영은 기존의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이미지를 희석하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계기가 되었다.

고유한 가치를 강조하며 종종 반전 매력을 뽐내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까지 겸비한 명품 브랜드의 변신이 MZ 세대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독보적인 가치와 즐거운 이야깃거리, 지속 가능을 추구하는 기업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차별성을 추구하는 모든 기업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최순화

미국 퍼듀대에서 소비자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0여 년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국내외 소비시장 트렌드, 브랜드 관리 전략, 문화예술 소비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뉴노멀 시대의 마케팅’(2016), ‘반감고객들’(2014), ‘I Love 브랜드’(2010)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