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하빈_자아성장 큐레이션 밑미(meetme) 대표

한때 운동은 비일상적인 것이었다. 살이 찌면 당장 시작해야 하는 이벤트이거나, 건강이 염려되는 나이대의 사람들이 하는 활동이라고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식 교육을 받아온 10대의 삶에서 운동은 체육 수업에나 잠깐 경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동을 기능적으로 바라보던 시대가 저만치 가버렸다. 이제 운동은 매일 나를 돌보기 위한 일상적인 활동이자,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현 방식이 되었다. 운동이 대변하는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서울 근교 청계산 근처로 즐비하던 중장년층의 등산족 사이로 이젠 심심치 않게 20~30대 등산러들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한강과 서울숲, 동네 산책로로 모여들어 저마다의 스타일로 운동을 즐긴다. 밤이면 유흥을 즐기던 밤의 도시 서울은 이제 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분명 운동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달라졌는데, 그 이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매일 운동하는 사람’의 소셜 가치

‘덤벨 경제(Dumbbell economy)’라는 경제 신조어는 아령을 뜻하는 ‘덤벨(dumbbell)’에 건강에 많은 투자를 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현상을 덧붙인 말이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건강은 자신을 표현하는 자산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은 자신을 더 멋지게 드러낼 수 있는 매개체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매일 운동을 인증하는 ‘#오하운’ 스토리도 소셜 미디어에 끊임없이 올라온다.

‘매일의 운동’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운동이라는 소재가 자신의 가치와 삶의 가치를 표현하는 ‘소셜화폐(Social currency)’로서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소셜 화폐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미지가 화폐와 비슷하게 ‘이득’이 된다는 것인데, ‘매일 운동하는 사람’의 정체성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이미지가 된다. 마치 패션처럼, 꾸준한 운동을 통해 다져진 건강한 몸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은 ‘성실함’을 대변한다. 성실함과 꾸준함에 높은 가치를 두는 MZ 세대에게 운동은 하나의 작은 성취이자 성실한 삶의 태도를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거대한 성취나 성공은 당장에 이루기 쉽지 않지만, 매일의 꾸준함으로 달라지는 몸과 마음은 그들에게 더 와닿은 성취이기 때문이다. 운동 후 변화된 몸을 찍고 공유하는 ‘바디프로필’의 유행 역시 이러한 트렌드를 말해준다.

운동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에, 운동의 카테고리도 훨씬 더 다양해졌다. 중장년층 남자의 운동이라고 여겨졌던 테니스와 골프는, 20~30대의 워너비 운동이 되고 있다. 테니스, 골프는 스팟을 예약하기도 힘들고, 자신의 취향을 대변해 주는 테니스 웨어와 골프 웨어도 나왔다 하면 품절 사태를 벌인다. 그 외에도 ‘한달살이’ 하면서 즐기는 서핑, 쓰레기를 주우며 달리는 플로깅, 바다와 산을 깨끗하게 정리하면서 걷는 클린 산행과 비치 클린 등 신념과 결합한 운동의 형태도 등장하고 있다. 이제 운동은 몸이 아니라 내 가치관을 반영하는 ‘표현 수단’이 되었고, 다양한 가치관을 드러내는 운동의 카테고리는 계속 확장할 것이다.

코로나 이후 더 가속화된 운동 트렌드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운동 트렌드가 오긴 왔을 테지만 이렇게 빨리 왔을까? 코로나는 우리가 삶에서 누리고 있던 많은 것들을 못 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반대로 잊고 있던 가치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중 하나가 ‘나의 삶’을 다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다.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없으니 내 집안, 동네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현재의 삶에서 도피할 수 있는 여행이 사라져버렸으니,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나의 마음을 달래는데 투자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은 이제 마음 챙김과 연결된 트렌드로도 확장되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겪는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운동이 되고 있다. 실제로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나와 마음의 건강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운동한 후 속 이야기를 나누는 운동 커뮤니티, 운동 후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는 리추얼 프로그램 등 운동과 결합하여 마음을 다루는 ‘운동x마음’ 페어링 활동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로 재택근무에 익숙해지고, 화상 미팅이 익숙해지고, QR 코드가 익숙해진 것처럼 운동의 다양한 가치를 느끼고 경험한 사람은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운동은 앞으로 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연결되어 개인화되고 다양해질 것이다.

운동을 이야기하지 않고, 관심사로 이야기하는 것

더 이상 운동은 스포츠의 카테고리가 아니다. 운동이 한 사람의 일상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요가를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이 비건의 삶을,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선택한다. 러닝을 좋아하는 사람 중 맥주와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처럼 운동은 개인의 관심사와 라이프스타일과는 떨어질 수 없는 연결고리가 된다. 운동을 말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관심사와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말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는 살을 빼려고, 더 멋진 외모를 보여주려고 운동하는 시대가 아니라, 나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손하빈

IBM, 에어비앤비에서 직장인으로 살다가, 현재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meetme)를 전 직장 동료와 공동창업해 운영 중이다. 타인의 개입과 평가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자신의 속도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 방법으로 일상에서 몸과 마음을 가꾸고, 보살피는 리추얼 서비스와 키트, 심리 콘텐츠, 제품을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