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신정 연휴에 ‘뭐 볼 건 없나…’하고 IPTV를 기웃기웃하다 재밌을 것 같아 본 영화가 ‘컨테이젼(Contagion)’이란 영화였다. 그때 필자는 영화 보는 내내 맥주를 홀짝이며 “아유, 너무 무섭다, 이렇게 안전한 세상에서 사니 얼마나 다행이야” 하고 한 치 앞도 모르는 중얼거림을 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2달 뒤 영화 속 세상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일을 경험하라고는 우리 중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와 함께 한 지난 1년이 우리 일상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바꾸었는지 감히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1%, 코로나 위기에 선방한 우리 경제
코로나가 발발한 초반, 우리 경제는 가파른 증시의 침체와 함께 기업들이 비즈니스를 극도로 줄이는 형태로 반응하였다. 광고비는 끝도 없이 추락하여 IMF나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같은 급락의 형태가 될 것이라고 모두가 두려워하였다. 광고 산업은 경기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표산업’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광고비 성장률은 GDP 성장률과 항상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하지만 당초 모두의 우려와 달리 우리 경제는 건강하였고, 기업들도 예상외로 선방하여 우리나라 GDP 성장률은 전년 대비 -1% 정도 역성장한 것으로 한국은행은 발표하였다. 공교롭게도 광고 시장도 GDP 성장률과 유사한 수준에서 마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2020년도는 IMF,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함께 제일기획이 광고산업을 집계한 역사상 3번째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IMF, 리먼 브라더스 사태 다음 연도에는 광고 시장이 가장 급성장한 해를 기록하였으니 2021년도도 다시 한번 큰 폭으로 성장할 것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물론 미디어별 상황은 조금씩 달랐다. OOH 미디어는 외부 활동이 줄어든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 가장 큰 축소 폭을 보였지만 다른 미디어들은 예상외로 선전하였다. 미디어별로 조금 상세하게 들여다보자.
코로나 직격탄, 움츠러든 OOH 미디어 시장
OOH(옥외, Out-of-Home) 미디어 시장은 코로나로 인해 가장 악재를 맞이한 미디어였다. 모든 국민들의 외부 활동이 제한받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가장 먼저 축소한 마케팅 활동이 외부에서 벌어지는 오프라인 활동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극장 광고 시장은 코로나 공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2020년 극장 관객 수는 5천 9백만명 정도로, 전년 대비 73.7% 감소세를 보였다. 광고비 감소 폭도 관객 감소 폭과 유사한 수준으로 예상되고 있으니, 기업들은 팬데믹 시대를 맞아 현명하게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고 할 수도 있다.
코로나가 가져온 산업의 변화는 OOH 미디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슬리퍼만 신고 나갈 수 있는 생활 반경 내 편의 시설이 점점 중요해지며 ‘슬세권(슬리퍼+역세권)’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와 함께 주거지 주변 미디어들이 주목받는 해가 되었다. 또한 OOH 미디어의 디지털화도 가속화되고 있어 자유표시구역 내 LED 확대 등으로 빌보드의 전광판 광고가 전년 대비 상승했고, 쇼핑몰과 아파트 LCD도 함께 성장하는 등 코로나 상황에서도 이들 미디어는 지속 성장하는 미디어가 되었다.
코엑스 K-POP 스퀘어 전광판
디지털과 하나돼 진화하는 OOH 미디어
옥외미디어의 디지털화는 코로나 시대 이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유동인구 데이터, 모바일 데이터, 교통 정보 등의 공공 데이터를 활용한 광고 상품들도 나올 것이며, DOOH의 발전으로 OOH 전광판과 모바일이 연동된 광고 집행도 다양하게 시도될 것이다. 몇 년 전 스페인에서는 실시간 트래픽을 분석하여 막히는 곳 전광판에 버거킹 광고를 노출하고 모바일앱으로 주문을 받아 모바일 위치 데이터를 연동하여 실시간으로 운전자에게 버거를 배달하는 광고를 집행한 적도 있었다. 다양한 법적 제약은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이런 광고 집행은 조만간 국내에서도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버거킹 Traffic Whopper 캠페인 (출처 버거킹 유튜브 계정)
어쨌든 우리가 미래 영화를 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미디어가 OOH 광고 아니던가.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개인의 동공을 식별하여 맞춤형 광고를 내보내던 장면을 필자는 잊지 못한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미래의 전광판 미디어는 근사했다. 어쨌든 OOH 미디어는 디지털 시대에도 각광받는 미디어가 되리라.
집콕 시청으로 하락세 잡은 방송 광고 시장
2020년 방송 광고 시장은 전년 대비 소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반기 매월 큰 폭으로 감소하였으나 하반기 성장세로 돌아서면서 전반적으로 소폭 감소하는 수준으로 마감되었다. 코로나로 가정 내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TV 미디어의 시청 시간은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닐슨 코리아 TV 패널의 시청 시간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 2020년 개인 시청 시간은 지난 2018년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평상시라면 야외 활동이 증가해 방송 시청이 급감하는 3월에도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19년 대비 20% 높은 시청 시간을 보였다.
그러나 방송시청 시간이 곧 지상파나 케이블의 실적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시청 시간의 증대는 다양한 볼거리에 대한 욕구로 분출되었고, 그에 따라 넷플릭스, 왓챠, Wavve 등 OTT 서비스의 가입과 이용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전세계 가입자 2억명을 돌파하였고, 지난 10월 국내 가입자도 300만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사가 지난 12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OTT 서비스 가입자는 56%로 집계됐는데, 이 중 87%가 코로나 19 확산 이후 신규 가입자였고, 평균 1.3개의 서비스를 가입했다.
방송사들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수익화에 대한 다양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주요 인기 콘텐츠들을 중심으로 한 PCM과 PPL 광고 확대였다. 대표적인 예로 <MBC 백파더>는 프로그램과 연계성을 고려한 PCM을 판매하고, <tvN 유키즈온더블럭>은 배경 PPL 형식을 파괴한 ‘감사의 말씀’ PPL을, <MBC 놀면 뭐하니>는 ‘싹쓰리’ 와 ‘환불원정대’의 높은 인기를 앞세운 ‘앞 광고’ 형태의 PPL을 선보였다. 또한 성공한 방송 콘텐츠를 활용하여 다양한 스핀오프를 시도하는 등 디지털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재미있는 시도를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중간 광고 허용으로 반등 기대
방송 콘텐츠의 유튜브 클립 재생이 허용되면서 디지털 세상에서도 방송 콘텐츠의 힘은 무시 못 할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유튜브 TOP 10 채널 순위에서 7개 이상을 방송 콘텐츠가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디지털 세상에서도 방송이 가진 콘텐츠의 힘은 여전히 건재함을 알 수 있다.
비록 침체에 빠졌던 방송 광고 시장이지만, 21년은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빠르면 6월, 시행령을 공포해 지상파 중간광고를 허용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제 45~60분 분량 프로그램은 1회, 60~90분 프로그램은 2회 등 30분마다 1회가 추가돼 최대 6회까지 회당 1분 이내의 중간광고가 가능하다. 또한 가상 · 간접광고(PPL)가 금지되던 방송 광고 시간제한 품목(주류 등)도 해당 품목 허용 시간대에 광고가 가능해지는 등 방송 광고 규제가 완화된다. 지상파에 불리했던 제도를 완화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보겠다는 시도이지만, 이미 지상파의 재원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제도 개선이 얼마나 방송 광고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팬데믹으로 주목받고, 기술로 날개 단 디지털 광고 시장
2020년 디지털 광고 시장은 코로나로 인해 성장이 더욱 가속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매년 10% 이상 성장을 보이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는 20년 역시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모바일 광고비는 단일 미디어 광고비가 방송 전체 광고비를 웃도는 광고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유튜브, SMR과 같은 디지털 동영상 미디어가 높은 성장세를 보이면서 노출형 광고비가 검색광고비와 거의 동일한 수준을 형성하였다. 이 추세면 내년에는 노출형 광고비가 검색 광고비를 상회하는 첫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디지털 광고 상품이 속속 출시되며, 플랫폼들은 커머스, 엔터테인먼트, 페이먼트 등 다양한 시도들을 지속해 나가고 있어, 이제는 디지털을 중심에 놓고 마케팅을 전개하는 시도가 모든 기업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모든 미디어의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젠 시청자의 구매 여정을 따라, 단계별 정교하게 목표를 세팅하고, 그 목표를 극대화하여 소비자 행동을 유발하도록 하는 것이 마케팅 활동의 목적이 되고 있다. 그야말로 ‘퍼포먼스 마케팅’ 시대이다.
오늘 아침 TV에서 알게 된 브랜드를 포탈에서 검색하고 검색과 함께 뜨는 동영상 광고를 한 번 더 시청하고, 회사 도착하기 전에 블로그에서 관련 리뷰를 찾아보고, 저녁 퇴근길 유튜브에 리타겟팅된 가입 메시지를 받아 잠들기 전 장바구니에 담아 구매하고 아침 출근길에 다시 리워드 쿠폰을 엘리베이터 LCD에서 받아보는 쇼핑 생활… 이미 우리 모두가 하고 있지 않은가.
제일기획 이현정 프로 (미디어퍼포먼스 1팀)
본 칼럼은 ‘한국 광고 총연합회 광고계동향 328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