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辭說)시조’라고 들어보셨나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를 겁니다. 영·정조 시대에 발아해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한 사설시조는 초장/중장/종장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형식이 무색할 만큼 매우 깁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도 “왜 이리 사설이 길어? 본론만 얘기해!”라는 말을 곧잘 하는데, 이때의 ‘사설’이 바로 사설시조의 그 ‘사설’입니다. 말씀 ‘사’에 말씀 ‘설’이 붙으니 당연히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사설시조의 특징이 비단 이런 형식적 측면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던 평시조가 주로 유교적 이념이나 자연 경관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면, 사설시조는 ‘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소박한 일상사, 찌질한 연애사에 때로는 욕설이나 음담패설도 거침없이 담아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태를 풍자하는 내용도 있었죠.

사설시조의 생산자와 향유자가 양반이 아닌 일반 서민이다 보니 형식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가능했던 것이겠죠. 요즘에는 사설이 길면 제지당하기 일쑤지만, 사실 사설은 ‘현실에 대한 자각과 개선 의지’에서 비롯됐습니다.

▲ 질병 등 액운을 물리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까치 호랑이 그림.
ⓒ 국립민속박물관

조선 후기에 사설시조와 함께 당대의 민중에게 향유되던 예술 장르가 있었으니, 바로 민화(民畫)입니다. 정식으로 그림 교육을 받지 않은 무명 화가들이 그렸던 민화는 화원이나 선비들의 정통 회화를 모방해 그린 실용적인 그림입니다. 그림의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렸으니, 기량적으로는 풋내가 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느끼는 대로 그린지라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면모가 보입니다.

민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현실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입니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그림, 액을 물리치는 까치 호랑이 그림, 자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석류 그림,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십장생 그림 등 한마디로 민화는 행복을 염원하는 그림이었습니다.

사설시조도 그렇지만 민화가 널리 그려지고 향유되던 조선 후기는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험한 시기에 행복을 추구하는 그림이 더 많이 그려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시대가 어려울소록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와 바람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겠죠.


▲ 부부가 화목하고, 자손이 번창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는 화조도.
ⓒ 국립민속박물관

소비자들의 뚜렷한 성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가치 소비’는 이제 개인적 영역을 넘어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베스트셀러 제목처럼 여럿이 함께 잘사는 것이 곧 나 자신도 잘 살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겠죠.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불을 지핀 건, 올 한 해 우리를 당황스럽고 고통스럽게 만든 코로나19입니다.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대 규모의 경제 침체라 불릴 만큼 전 세계가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연대와 실천의 의미가 더욱 각별해졌습니다. 개인적 실천뿐 아니라 타인의 실천, 나아가 브랜드의 참여까지 촉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소비자와 함께 공동의 사회/환경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색하는 브랜드는 큰 공감대를 일으키고, 이는 곧 기업의 생존을 위한 토대가 됩니다. 그 어느 때보다 ‘브랜드 액티비즘’에 대한 기대가 높은 요즘, 제일매거진 12월호에서는 ‘브랜드 액티비즘이 부각되고 있는 시대적 변화와 당위성’에 대해 짚어봅니다.

19세기, 척박한 조선 땅에 살던 사람들이 사설시조를 통해 현실 개선의 의지를 내비치고, 민화를 통해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꿈꾸었듯 한 해의 모퉁이에서 ‘모든 삶의 지속가능성’을 염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