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지인들의 인스타스토리에서 경주용 자동차에 타고 있는 친숙한 캐릭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재택 근무와 화상 수업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을 만날 수 없게 되자, ‘카트라이더: 러시플러스’를 통해 모바일 레이싱을 함께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친구들과 술 마시고 PC방에 가서 하는 게임’이었던 카트라이더는 지난 5월 모바일로 출시되자마자 구글플레이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이를 보며 혹자는 코로나19가 게임 산업에도 뉴트로 열풍을 불러왔다고 평했지만, 사실 게임업계에서 뉴트로는 상당히 오랫동안 화두였던 것이 사실이다. 게임업계를 관통하는 신고전주의 물결을 조명해 보고, 그중 코로나19라는 파도가 추가적으로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지 알아보자.

코로나19가 초래한 산업계 전반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게임업계의 1분기 실적은 오히려 개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감염 위험이 높은 PC방에서의 수익은 감소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으로 비대면 여가 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온라인 및 모바일 게임 수요가 급증한 때문이다.

넥슨을 제외한 국내 주요 게임사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고, 넥슨 역시 중국 시장에서 ‘던전앤파이터’가 부진했을 뿐 국내 매출은 사상 최대치를 갱신했다. 해외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아서 미국, 프랑스, 영국 게임 이용자들의 평균 게임 이용 시간이 30~45%가량 증가한 바 있다(닐슨, 2020).

*출처: ‘게임업계, 코로나19에도 1분기 선방’, 이투데이, 2020년 5월 13일자 기사.

게임 업계의 이러한 호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사조가 바로 ‘뉴트로’이다. 과거 흥행작들의 탄탄한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시장에 무혈 입성하는 이 게임들은 기성 세대의 향수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MZ세대를 일부 신규 고객으로 편입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명작의 매력적인 IP에 진보된 그래픽이 가미됨으로써 젊은 세대의 입맛마저 저격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현재 ‘게임 뉴트로’라는 거대한 지붕을 받치고 있는 3개의 기둥은 ‘Re(리마스터)’와 ‘M(모바일)’, 그리고 ‘콘솔’이다.

우선 리마스터링은 기존 콘텐츠의 화질, 음성을 현대의 기준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말로, 블리자드가 그 대표 주자이다. 2017년 국내 한정이란 한계 때문에 민속 놀이라 불리던 ‘스타크래프트’가 리마스터링된 이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과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가 연이어 출시된 바 있다.

하지만 5개월 시차를 두고 출시된 워크래프트의 두 리마스터작의 성적표는 극과 극이었다. 작년 8월 발매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의 경우 오리지널의 게임성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재까지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서버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반면 올 1월 출시된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는 2018년 블리즈컨에서 약속한 게임 캠페인 수정 및 시네마틱 추가가 이뤄지지 않고, 시각 효과의 개선도 미비해 메타크리틱 최저 평점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 worldofwarcraft.com

ⓒ playwarcraft3.com
▲ 상반된 평가를 받은 블리자드의 두 리마스터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과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국산 장수 게임들은 작년 3월 리마스터된 ‘리니지’를 제외하면, 리마스터보다는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유저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선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도 넥슨의 2003년 작 MMORPG ‘메이플스토리’가 초기 게임성을 추억하는 유저들을 위해 2015년 ‘리부트월드’를 추가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IMF 외환 위기 이후인 2000년대 들어 온라인에 등장한 은어 ‘린저씨(리니지 하는 아저씨의 줄임말)’를 한 번쯤은 들어본 분들도 있을 것이다. 작년 프로 야구에서 두산의 양의지 선수가 NC로 이적하면서 초대박 FA계약(4년 125억 원)을 맺은 소식에 “린저씨들이 프로 야구판을 흔들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필자들은 두 사람 모두 두산 팬이기 때문에 그 충격은 엄청났다). 어마무시한 금액의 ‘현질’도 두려움 없이 사용하는 그들이 리니지라는 게임에 끼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들은 이제 PC를 넘어 모바일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출시됐던 PC 온라인 MMORPG ‘리니지2’를 재해석한 ‘리니지2M’은 기존의 린저씨들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의 입맛 역시 사로잡음으로써, 사전 예약 18시간 만에 200만 건, 5일 만에 300만 건을 기록했다. ‘리니지2M’은 현재도 구글플레이 매출 및 인기 순위 1위를 유지하며 NC 소프트 실적 고공행진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넥슨의 경우,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카트라이더’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출시된 지 15년이 된 IP임에도 불구하고, 출시 후 양대 마켓 매출 상위권에 진입, 서비스 2주 차부터는 구글플레이 4위 및 앱스토어 1위에 올랐다. 누적 이용자 수는 글로벌 900만 명을 돌파했고, 일일 최대 이용자 수는 357만 명까지 치솟았다.

해외 시장에서도 MMORPG, SRPG 중심의 양산형 게임들에 지친 유저들로부터 가뭄에 단비 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넥슨이 출시한 모바일 게임 최초로 글로벌 사전 등록에서 500만 명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이 기세를 몰아 하반기에는 ‘피파 모바일’, ‘바람의 나라: 연’의 출시를 통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IP를 통한 연타석 홈런을 기대하고 있다.

ⓒ ‘피파 모바일’ 홈페이지 캡처

ⓒ ‘바람의 나라: 연’ 홈페이지 캡처
▲ 넥슨의 하반기 신작 모바일 게임 ‘피파 모바일’과 ‘바람의나라: 연’

콘솔 뉴트로를 이끌고 있는 콘텐츠는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동물의 숲’이다. 2007년 닌텐도 DS용으로 12월 국내 발매된 ‘놀러오세요 동물의 숲’은 당시 공격적인 마케팅과 함께 힐링 게임으로 포지셔닝되며 국내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는 2020년 발매된 ‘모여봐요 동물의 숲’으로 재현됐다. 실제로 ‘동물의 숲’을 플레이할 수 있는 닌텐도 스위치는 반일 논란에도 불구하고 연일 품절을 기록한 바 있다. 필자들도 며칠 동안 국전(국제 전자센터)에서 발매를 기다렸으나, 결국 게임칩 구매를 포기하고 닌텐도 e-shop에서 다운로드 받아 즐기고 있다.

이 게임 외에도 코로나19의 여파로 집콕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린 시절 플레이했던 ‘슈퍼마리오’, ‘소닉’ 등을 레트로 게임기로 즐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유저가 콘솔 게임을 하는 주된 이유가 높은 게임성(퀄리티 있는 그래픽, BGM, 스토리 등)에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콘솔 뉴트로’가 한때의 유행일지 아니면 하나의 주류로 유지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유명세를 바탕으로 럭셔리 브랜드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는
‘모여봐요 동물의 숲’. ⓒ nintendo.co.kr

뉴트로가 현재 게임업계를 움직이는 화두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게임업계에 비수로 날아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용할 수 있는 IP도 한정돼 있을뿐더러, 현재 라이프스타일에 과거의 게임성이 부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과 ‘리니지 리마스터’는 신규 유저 유치에 실패하며 그 한계를 드러냈다.

게임업계가 지속적인 ‘꽃길’을 걷기 위해서는 콘텐츠 완성도를 갖춘 신작을 개발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언리얼 엔진 5(플레이스테이션 5 탑재)’가 그래픽의 신기원을 여는 등 꾸준한 진보가 뒷받침되고 있는 만큼 게이머들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역작 IP가 등장하길 바라 본다.

제일기획   곽병주, 김규동 프로 (비즈니스 18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