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플랫폼 서비스가 나타났다. 이름하여 ‘퀴비(Quibi)’.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름 같기도 한 이 플랫폼의 경쟁 상대는 무려 ‘넷플릭스’다. 이미 디즈니와 HBO를 비롯한 수많은 OTT(Over the Top)업체들이 넷플릭스에게 도전장을 던지며 점점 더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동영상 플랫폼 서비스 세계에서 퀴비는 어떻게 할리우드의 큰 관심을 받게 됐을까? 그 열쇠는 다름 아닌 ‘시간’에 있다.

‘Quibi(Quick Bites)’는 약자 그대로 10분 안팎의 짧은 동영상 콘텐츠만 제공하는 ‘숏폼(Short-form) 콘텐츠 플랫폼’을 지향한다. 본격적인 서비스 개시를 시작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미 JP모건, 알리바바 등 세계 유수의 투자자로부터 약 14억 달러(1조 6000억 원)를 투자받았다.

퀴비는 올해 4월부터 밀레니얼, Gen-Z 세대를 타깃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기예르모 델 토로 등이 제작한 5~10분 내외의 자체 오리지널 동영상 콘텐츠와 ‘턴스타일(Turnstyle)’이라는 핵심 기능을 무기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편당 60분 내외, 최소 8~10편 이상을 시청해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넷플릭스 콘텐츠 대비 유튜브나 스냅챗, 틱톡의 짧은 동영상 소셜 콘텐츠에 익숙한 #숏확행세대들은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돈’보다 ‘시간’이라는 가치를 가장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퀴비의 등장이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짧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의 숏확행은 지난해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브랜딩 캠페인으로 더 유명해진 신조어. ⓒ Tik Tok


▲ 최근 숏폼 콘텐츠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는 tvN의 발걸음 또한 주목할 만하다.
국내 방송 최초 10분 내외의 숏폼 콘텐츠를 붙여 만든 옴니버스 예능 tvN의 <금요일 금요일 밤에>.
ⓒ tvN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평일이나 주말이나 언제나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나라 밀레니얼 소비자들은 항상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세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이면에 귀차니즘과 편리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욕구 자체가 있겠지만,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돈보다는 시간의 중요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나의 물리적 노동 시간을 얼마나 줄여 줄 수 있는지가 지갑을 꺼내는 기준이 됐다.

그들은 이 비용으로 확보한 시간을 또 다른 경험을 사는 것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간’이라는 아이템이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경험을 새롭게 제안하고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삼신(三新)가전’이라고 불리는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는 이런 소비자들의 시간 대비 효용 가치를 대표하는 필수 가전제품들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빨래를 널고 걷는 시간,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말리는 시간뿐만 아니라 청소를 하는 노동 시간까지 이제는 이 필연적 ‘시간’들을 ‘돈’으로 사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

이런 현상은 일반 가전제품의 영역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앱, 모바일웹, SNS 플랫폼 등을 통해 더 다각화되는 양상이다. 스마트폰 앱 하나면 시간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음식 배달부터 잔심부름까지 대신해 주며, 심지어 배송까지 1분이라도 더 빠르게 받아보길 원하는 소비자들은 로켓 배송, 샛별 배송 등의 서비스를 탄생시켰다.

집에서 음식을 해먹는 시간과 비용 대비 간편한 HMR(Home Meal Replacement)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더욱이 집안일에 소요되는 노동력을 아껴 더 생산적인 일에 활용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육아, 가사를 대신하는 가사 서비스를 비롯해 청소를 대신해 주는 홈클리닝 업체, 빨래부터 드라이까지 비대면으로 풀서비스가 가능한 세탁 서비스까지 등장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이런 서비스 모두 소비자들의 시간이라는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들이라고 볼 수 있다.

▲ 마켓컬리는 ‘샛별 배송’을 내세워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이다.
ⓒ 마켓컬리

커피 한 잔이 4분이고 스포츠카 한 대가 59년인 세상. 모든 비용이 시간으로 계산되는 영화 <인타임>의 세계다. 영화에서 그린 미래가 현실이 되긴 어렵겠지만, 앞으로 시간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고 소비자들은 그 시간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라이프스타일의 효율성을 중시하게 된 지금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 줄여 주기’의 미션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기업들이 결국 주목받고 살아남을 것이다. 물론 이 시간 미션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소비자들의 시간을 단순히 줄여주는 것만이 아닌 편리함과 프리미엄이라는 가치를 통해야만 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