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기묘한

“중국 커머스의 공습”

언제인가부터 우리의 뉴스피드엔 이와 비슷한 제목의 기사들이 자주 올라오고 있다. 시작은 지난해 3월 마동석 배우를 앞세운 알리익스프레스의 광고였다. 알음알음 아는 사람만 쓰던 알리익스프레스(이하 알리)가 갑자기 대중의 눈앞에 전면적으로 등장했고, 여기에 이미 미국을 휩쓴 온라인 쇼핑몰 테무마저 국내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중국 커머스에 대한 언급량은 급속도로 늘게 된다.

그리고 이와 함께 등장하는 것이 바로 ‘국내 커머스 업계 위기론’이다. 앱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기준으로 알리는 어느새 11번가마저 제치고 2위에 올라섰다고 하며, 테무 역시 4위까지 급성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업계 1위인 쿠팡의 자리마저 넘보고 있다 하니, 정부까지 등판해 정책 대안을 논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짜 위기는 아닙니다

다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위기라고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분명 앱 MAU 등 트래픽 지표 기준으로 중국 커머스 기업들이 최상위권에 자리 잡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건, 트래픽이 바로 거래액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앱 · 리테일 분석 서비스 업체인 ‘와이즈앱 · 리테일 · 굿즈(이하 와이즈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알리익스프레스의 결제 추정 금액은 8196억 원에 불과하다. 물론 전년 대비 164%나 늘어난 수치이긴 하지만, 12조 7034억 원에 달하는 쿠팡의 결제 금액과 견주기엔 크게 부족하다. 심지어 여러 기사에서 이미 추월했다고 평가하는 11번가의 결제 금액만 해도 2조 631억 원으로 알리의 2배 이상의 규모다. 그나마 알리는 다른 플랫폼들과 비교할 수준까지 올라섰지, 테무의 1분기 추정 결제 금액은 911억 원으로 아직 갈 길이 멀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분기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59조 6768억 원이다. 이 중 중국 직구 거래액은 9384억 원으로 전체 거래액의 약 1.6%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커머스 시장을 당장 집어삼킬 것만 같은 기사들엔 엄살이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침공은 계속될 겁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국내에 발을 들여놓는 외국 커머스가 중국 기업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알리와 테무에 이어, 지난 4월 아마존도 49달러(약 6만 8천 원) 이상 구매한 국내 고객 대상으로 무료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선언했다. 바야흐로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장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그리 놀라운 현상은 아니며 사실 조금 늦은 감도 있다. 세계적으로 IT분야에 있어서는 소수의 글로벌 기업이 로컬 시장들을 장악하는 것은 이제 대세가 되었다. 국내만 하더라도 구글(검색), 유튜브(동영상), 넷플릭스(OTT), 메타와 틱톡(소셜미디어) 등 글로벌 서비스들이 각 분야에서 시장을 장악하거나 혹은 점차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이커머스 시장 역시 과거 이베이가 G마켓을 앞세워 한국 시장 1위 자리를 오랜 기간 지켜오기도 했다. 단지 쿠팡이라는 ‘이레귤러(Irregular, 특이한 존재)’가 갑자기 튀어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이 다시금 본격화됨에 따라, 결국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플랫폼과 셀러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쿠팡과 네이버 등 소수의 상위 플레이어를 제외한 플랫폼들은 이미 오랜 기간 적자를 기록하며 자생력을 많이 상실한 상황이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해외 기업들의 공세에 밀릴 가능성이 높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셀러다. 기존에는 해외 사입, 특히 중국 제품을 들여와 다시 재판매하는 모델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중국 셀러 혹은 심지어 상품 공급 업체가 직접 진출하는 경우, 가격 경쟁에서 이들을 이겨내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당장의 생존이 어려울 정도다.

‘경제의 해자’를 더 깊게 파야 합니다

국내 기업들이 이러한 위기를 이겨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결국 기존의 기득권을 지키려면 새로 유입되는 경쟁자가 손쉽게 시장에 들어올 수 없도록 더욱 깊이 해자를 파야 한다. 쿠팡이 발표한 향후 3년간 3조 원 투자 계획이 대표적이다. 물류 인프라 차이는 아무리 뛰어난 후발 주자라도 쉽게 좁힐 수 없다. 전국 모든 지역에서 로켓배송을 구현하는 쿠팡의 비전이 실현된다면 알리, 테무, 심지어 아마존일지라도 이를 이겨 내긴 어려울 것이다. 최근 쿠팡뿐 아니라, 네이버, 11번가 등이 연이어 물류 투자 혹은 배송 경험에 나선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셀러 입장에서는 브랜딩이 이와 같은 해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상품 품질이 상향 평준화될수록 결국 누가 좋은 브랜드 경험을 주는지가 기업 간 경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 더욱이 단순히 누가 더 저렴한가의 기준으로 중국 기업들을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마뗑킴, 마르디, 메크르디 등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돌풍을 일으킨 패션을 시작으로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신진 브랜드들이 때마침 나오고 있다. 더욱이 아예 네이버나 무신사 같은 플랫폼에서는 전략적으로 브랜딩 활동을 지원하며 이들과의 생태계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도 한데,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다.

우리도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국내 커머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선,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커머스 역시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 국내 내수 시장의 규모는 한정적이다. 아무리 경제적 해자를 깊게 파도 언젠가는 밀릴 수도 있다. 과거 국내 소셜 미디어 시장을 장악했던 싸이월드나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을 열었던 판도라TV가 각각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밀려 자취를 감췄듯이 말이다.

반면에 삼성, 현대자동차 등 몇몇 브랜드는 여전히 국내 시장 내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 시장에 진출해, 상위권 기업으로 올라설 정도로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해외 진출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해외로 나서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이커머스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의 입지도 지킬 수 있길 바라본다. 그리고 이미 북미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 포시마크(Poshmark)를 인수한 네이버나 글로벌 명품 플랫폼 파페치(Farfetch)를 인수한 쿠팡처럼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해외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선 사례도 많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리라 본다.


칼럼니스트 기묘한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 커머스 업계에서 10년 이상 일해온 현직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며, 아웃스탠딩, 커넥터스, 요즘IT, 스브스프리미엄 등 다양한 매체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 ‘물류트렌드2024(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