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윤 서울대 소비트렌드 연구원
온라인, 오프라인, 메타버스와 같은 제3의 공간까지.
소비 공간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공간력’은 갈수록 중요해진다. 이제 입지가 좋다거나 특정 인기 공간을 점유하는 점만으로 그곳에서 소비가 일어나기를 기대할 수 없다. 공간 자체가 가진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 그 자체로 소비하고 싶게끔 만드는 힘, 즉 공간력을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무엇인지 최신 사례와 함께 알아 보고자 한다.
2023년 9월 현재, ‘핫플’로 유명한 서울 성수동에 방문한다면 몇 개의 팝업 공간을 만날 수 있을까? 정답은 대략 50개 내외.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팝업 공간의 색깔도 다채롭다. 크고 작은 패션 · 식음료 브랜드, 신작 영화 · 드라마를 홍보하는 제작사, 게임대회를 주최하는 게임사, 금융사, 공공기관 등 소비자들에게 존재감을 알리고 싶은 플레이어라면 누구든 팝업을 마련한다. 또 하나의 ‘팝업 성지’로 유명한 더현대 서울 역시 트렌디한 공간 콘텐츠의 힘으로 소비자를 불러 모으고 있다. 덕분에 매출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어 팝업에 대한 관심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더현대 서울 디즈니 스토어와 브랜드 선악과즙 팝업 스토어 FORBIDDEN HOTEL OPEN (출처 : 더현대 서울 인스타그램)
최근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런데 공간을 소비하는 양상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소위 ‘입지 좋은 곳’이라는 가게도 힘을 못 쓰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대학가 상권은 코로나 이후 대학생 소비자들이 온라인 쇼핑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온라인, 오프라인, 메타버스와 같은 제3의 공간까지 등장하면서 소비 공간은 말 그대로 전쟁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저 장소로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소비자를 불러 모으는 공간력을 갖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어떠한 공간이 공간력을 가질까?
지금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 새로움이 이어지는 공간
팝업(POP-UP)은 이름 그대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특정 기간에만 만날 수 있다는 한시성이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무엇이 되었든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공간을 짧게 운영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소비자들의 주목을 모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경험이다.
웹소설이자 웹툰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의 팝업스토어 (출처 : KB북스 인스타그램)
지난 5월 더현대 서울에서 진행한 일명 ‘데못죽(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팝업에는 오픈 첫날에만 약 2000여명의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섰다. 팝업을 진행하는 2주간 1만 5000여명이 다녀갔고 1인당 평균 구매 금액은 50만원으로 매출 성과도 좋았다. 흥미로운 것은 ‘데못죽’이 잘 나가는 럭셔리 브랜드도,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그룹도 아닌, 웹소설 · 웹툰의 제목이라는 점이다. 팝업에서 최초 공개되는 일러스트, 방문할 때마다 다른 굿즈가 주어지는 룰렛 뽑기 등 콘텐츠를 마련함으로써 팬이라면 한 번은 필수이고 몇 번이고 재방문하게 만들었다.
팝업과 같은 임시 공간 외에 고정된 공간에서도 새로움을 도모할 수 있다. 더현대 서울과 같은 유통 공간은 새로운 팝업을 유치하는 것이 곧 새로운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이 된다. 일종의 플랫폼 역할이다. 연남동에 위치한 ‘몽중식’은 식당이지만 요리를 넘어서서 새로운 경험을 선보인다. 영화 한 편을 테마로 선정해 테마에 맞게 요리는 물론, 플레이팅, 인테리어 컨셉까지 바꾼다. 소비자들은 그 시즌에만 만날 수 있는 다이닝 경험을 놓치지 않기 위해 테마가 바뀔 때마다 정기적으로 식당을 찾는 단골이 된다.
영화 테마로 인테리어 컨셉을 정하는 중식당 몽중식 (출처 : 몽중식 인스타그램)
그곳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 목적지가 되는 공간
끊임없이 새로움을 제공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시그니처를 통해 공간력을 도모한다. 스타벅스는 2020년부터 지역 곳곳에 특화 매장을 선보이고 있다. 양평, 북한강, 북한산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서울 근교에 일반 매장과는 차별화된 매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뷰맛집’이라는 말처럼 그 곳에서만 즐기는 수 있는 ‘한강 뷰’ ‘북한산 뷰’와 함께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탁 트인 공간감을 선사하는 매장이다. 단지 넓다는 점에서 나아가 주요 지역 매장의 경우 지역 상징을 인테리어에 반영하거나 지역 한정 메뉴를 운영하기도 한다. 프랜차이즈의 핵심은 표준화이지만 특화 전략을 접목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울릉도에서 운영되며 자연 속에서의 고립을 테마로 선보이는 코스모스 리조트 (출처 : 코스모스 리조트 인스타그램)
울릉도에 위치한 코스모스 리조트도 흥미로운 사례이다. 코오롱 그룹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위치상 울릉도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산 바로 아래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낮은 편이다. 처음부터 리조트를 짓기 위해 부지를 선정한 것이 아니라 과거 코오롱 그룹의 사유 시설이었던 곳을 재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주어진 여건을 그곳만의 콘텐츠로 승화했다.
밤이 되면 주변이 암흑에 휩싸이는 것을 활용하여 라이팅 쇼를 진행하며 소등된 후에는 ‘자연 속에서의 고립’, ‘일상에서의 로그아웃’을 즐길 것을 권한다. 그 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평온함·고요함은 울릉도에 가는 김에 그곳에 묵는 것이 아니라 코스모스 리조트에 묵기 위해 울릉도를 방문한다고 할 정도로 강력한 공간력으로 발휘된다.
사람들이 어떠한 공간에 끌리는가를 묻는다면 다양한 답변이 가능할 것이다. 감도 높은 인테리어, 압도적인 건축물, 오감을 동원하는 총체적 경험 등등. 그러나 이를 관통하는 본질은 하나로 말할 수 있다. 방문하는 사람에게 유일무이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 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대체불가능한 선택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권정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학·석·박사. <트렌드 코리아 2019>, <트렌드 코리아 2020>, <트렌드 코리아 2021>, <트렌드 코리아 2022>, <트렌드 코리아 2023>, <트렌드 코리아 2024> (10월 발간 예정),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 집필에 참여했다. 전자·식품·뷰티·통신·유통·여가 등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과 소비트렌드 도출 작업을 함께했다. 현재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소비자와 시장’ 과목을 강의하며 끊임없이 ‘소비자와 시장’과 관련한 새로운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