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_미디어 뉴즈 & 메이저스네트워크 공동창업자
고등학생들의 댄스 영상, 귀여운 고양이 영상, 예능 방송의 클립 영상 등 짧은 영상이 쓱쓱 지나가고,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숏폼 콘텐츠가 큰 인기다. 많은 사람이 더 짧은 콘텐츠, 더 짧은 영상에 열광한다. 2031년 글로벌 숏 영상 시장 규모는 29억 9,520만 달러(한화 3조 원)로 예측되며,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이 숏폼 콘텐츠 1인자를 노리며 삼파전을 벌이고 있다.
(출처: 구글 플레이스토어)
미국 싱크탱크 퓨리서치는 미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소셜미디어 리서치를 진행했다. 이에 따르면 “소셜미디어를 사용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유튜브는 95%로 1등이었다. 틱톡은 67%, 인스타는 62%로 각각 2위, 3위였다. 그러나 “항상 방문하는가”로 질문을 바꾸면 격차가 좁혀진다. 유튜브는 응답자의 19%, 틱톡은 16%를 사로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누구나 찾는 유튜브, 충성도 높은 틱톡
(출처: 틱톡 공식 유튜브 채널)
틱톡은 15초~1분 내외 짧은 영상 위주의 플랫폼이다. 유튜브의 수치가 기존 영상과 숏폼 영상의 합작품이라는 걸 고려했을 때 틱톡의 숏폼이 가진 저력을 유추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숏폼의 미래를 궁금해한다. ‘숏폼의 인기는 이어질까?’, ‘숏폼은 어떻게 진화할까?’ 현장 담당자들은 현재의 대처와 대비를 고심한다. 숏폼은 고객들이 시간과 마음을 쓰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니까. 고객을 사로잡는 건 모든 브랜드의 숙원이니까.
숏폼 콘텐츠의 미래는 (지금의) 숏폼에서 찾을 수는 없다. (언제나 그렇듯) 미디어 자체가 아닌 인간의 행동 변화, 그 현상과 이유를 짚어야 한다. 브랜드는 숏폼을 무어라 정의할 것인가, 사람들은 ‘숏폼’이라서 매료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의 조각들은 도처에 퍼져 있다. 그걸 모아야 전략의 퍼즐도 새로이 맞출 수 있다. 유저에 대한 이해가 숏폼의 미래를 만든다.
숏폼의 인기 이유 = (정보) 풍요 속의 (관심) 빈곤
다양한 쇼츠 영상을 소개하는 유튜브 공식 계정
(출처: 유튜브코리아 공식 유튜브 채널)
숏폼의 인기는 예견된 미래였다. 노벨 경제학을 수상한 허버트 시몬은 1971년에 이미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보의 풍족함은 또 다른 결핍을 의미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정보가 늘어나도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의력은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쏟아지는 과잉 정보 속에서 사람들은 모든 정보에 관심을 두지 못한다. 개별 정보에 대한 주의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일종의 ‘정보의 과부하’라고도 볼 수 있다.
한 논문에 따르면, Z세대는 온라인에서 정보를 찾으며, 가장 먼저 ‘정보의 과부하’를 겪는다. 쏟아지는 정보, 의견, 광고에 파묻혀 ‘감정적인 과로 상태’에 이른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화면 속 세계를 필터링한다. 그 방식 중 하나가 숏폼이다. 스낵처럼 소비할 수 있고, 일종의 요약본으로 정보를 간추려 파악할 수 있다.
숏폼은 증명한다, 숏폼으로 소통한다
(출처: 틱톡 공식 유튜브 채널)
과연 이 콘텐츠에 내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있을까?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Z세대는 가치를 ‘인증(Validation)’받은 콘텐츠인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숏폼은 이 인증에도 특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빠르게 영상을 파악할 수 있고, 하트나 공유 개수로 바이럴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내 추천 피드에 떴다는 건 충분히 바이럴이 됐다는 뜻이며, 내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콘텐츠라는 증거가 된다. 영상 댓글을 보며 남들은 어떤 평가를 하는지 참고할 수 있으니 더욱 편하다.
숏폼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상호작용은 신뢰도를 크라우드소싱하는(Crowdsourcing Credibility) 효능감을 준다. 혹시 내가 놓친 건 없는지,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효과적으로 소화하게 돕는다. 또한, 댓글을 달거나 가볍게 영상을 찍어 올릴 수도 있다. 내가 행동하고, 개입할 여지도 큰 편이다. 그러니 대중들은 숏폼에 더 깊게 빠져든다. 이러한 과정은 자극과 반응의 순환고리, 인게이지먼트가 강화되는 방향이다.
끊임없는 상호작용은 숏폼의 매력
(출처 : 인스타그램 비즈니스 사이트)
흔히들 숏폼 콘텐츠를 보면 시간이 ‘순삭(순간 삭제)’된다고 한다. 자려고 누웠는데 숏폼 좀 봤더니 금세 두세 시간이 지났다는 경우는 흔하다.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이유는 우리가 몰입했기 때문이다. 좌우로든 상하로든 끊임없이 영상을 넘기며, 숏폼을 보고 반응을 살핀다. 그리고 자기 나름의 맥락을 형성한다. 행동을 촉발할 수도 있다. 챌린지를 따라 하거나, 영상 속 레시피처럼 음식을 만들 수도 있다. 숏폼 콘텐츠에 등장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여행이나 구매를 하기도 한다. 숏폼을 활용하는 브랜드들은 유저의 몰입에 힘입어 자신을 알리고, 소비자와 관계를 맺는다.
숏폼에 오픈 월드 게임의 기획을 대입하면?
(출처 : 오픈 월드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스팀 홍보 이미지)
그렇다면 숏폼 콘텐츠는 앞으로 진화할까? 그리고 브랜드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누구도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하나의 인사이트는 있다. 숏 영상의 몰입 경험에 대한 논문에선 숏폼의 몰입 경험을 ‘오픈 게임(Open Game)’에 비유하기도 한다. 오픈 게임이란, 상호작용이 가능한 시스템 속에서 게임이 지속되는 포맷을 지칭한다. 한 판 하면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 다음 스테이지, 다음 미션, 길드와 함께 끊임없이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 포맷이다. 게이머가 게임 속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오픈 월드 게임’ 장르가 대표적이다.
화면으로 숏폼을 보는 사람을 한 명의 게이머로 치환할 때 숏 영상이 주는 몰입은 일종의 게임 같은 경험으로 풀이된다. 각종 이벤트가 알차게 준비된 가상 공간이 있고, 풍성한 숏폼 영상의 세계에서 유저는 ‘상호작용’이라는 플레이를 한다. 더군다나 그 게임은 끝없이 이어진다.
콘텐츠 소비의 축에 ‘게임스러움’을 추가할 수 있다. 예컨대 오픈 월드 게임의 기획을 숏폼 기획에 접목할 수 있다. 오픈 월드 게임은 보통 ‘선형적 퀘스트’와 ‘비선형적 이벤트’가 합쳐서 게이머의 몰입을 높인다. 선형적 퀘스트라는 건 일직선으로 쭉 진행되는 이야기다. 왕자를 구해야 한다거나, 악당을 무찌르는 등 게임엔 정해진 목적이 있고, 주요 이야기는 그 목적에 맞춰 진행된다. A를 하면 B가 나오고, B를 하면 다시 C가 되는 식으로 주인공이 해야 할 목적 혹은 방향은 정해져 있다.
반면 비선형적 이벤트라는 말은,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은 사건들이 랜덤하게 발생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마을 귀퉁이를 심심해서 들렀는데, 거기에 한 노인이 있다. 말을 붙여 봤더니 비밀의 무기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것이다. 개발자들이 곳곳에 숨겨 놓은 장치들을 사람들은 발견해도 되고, 지나칠 수도 있다. 정해진 이야기와 랜덤한 사건이 섞어 오픈 월드 게임은 마치 실제 세상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생생함은 게이머를 몰입하게 만든다.
브랜드가 숏폼을 활용하는 방법
(출처 : 삼성전자 글로벌 공식 유튜브 채널)
이를 숏폼 마케팅 전략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무엇을 비선형적 이벤트로, 선형적 퀘스트로 설정할지는 기획자의 자유다. 사람들이 댓글을 달며 이야기하고 싶게 하는 숏폼 영상들을 비선형적 이벤트로, 각 숏폼 영상에 담긴 힌트들을 모아 퀴즈를 풀면 사은품을 받는 걸 선형적 퀘스트로 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자유도를 부여하고, 어떤 선형적 퀘스트를 제시해 브랜드가 의도하는 스토리라인(과 그에 따른 기대 효과)을 따라잡게 할지 여러 시도가 필요하다.
숏폼을 오픈 게임으로 볼 때 비로소 숏폼을 십분 써먹을 수 있다. 숏폼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경험을 줄 수 있는 다면적인 매체다. 콘텐츠가 어떻게 소비될지 여부와 함께 유저의 몰입 또한 기획, 마케팅의 고려 대상이 된다. 게임스러움이라는, 숏폼 특유의 엣지를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가. 숏폼의 향방은 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김지윤
YTN 모바일 PD, 아웃스탠딩 기자를 거쳐 2020년 뉴즈, 메이저스 네트워크를 공동 창업했다. Z세대 타깃 숏폼 전문 MCN ‘메이저스 네트워크’에서 제작 총괄을 맡아 기획, 제작, 교육, 관리와 사업 등을 수행해 전반적인 콘텐츠 총괄 역할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