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_일본 유자베이스(UZABASE)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2021년 기업가치 3조 원
가입자 수 2천만 명
MAU(월간 이용자 수) 1,500만 명 돌파
누적 가입자 수 2,100만 명
1인당 월평균 방문 횟수 64회

이렇게 화려한 수치를 자랑하는 앱은 어디일까? 월평균 64회 방문 즉, 한 사람이 하루에 2번은 꼭 방문한다면 음식 배달 앱일까?

10년 사이 5배 성장한 중고거래 시장

이는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의 이야기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008년 4조 원에서 2020년 20조 원으로 10년이 조금 넘는 사이에 5배 성장하였다.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당근마켓’과 ‘번개장터’, ‘중고나라’ 등 중고 거래 앱을 사용하는 순 이용자 수(Unique Visitor)는 2021년 6월 기준으로 약 1090만 명에 달해, 스마트폰 이용자 4명 중 1명은 중고거래 앱을 사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중고거래 열풍을 주도한 당근마켓은 1789억 원규모의 시리즈 D 투자 유치에 성공하였으며 유통 기업인 신세계의 시가 총액보다 더 큰 가치인 3조 원을 인정받았다.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자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들까지 중고기업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유통 대기업 롯데가 중고나라를 인수하였으며, 이마트 24는 ‘파라바라’와 손잡았고GS 리테일은 당근마켓과 MOU를 체결하여 중고거래 시장에 진출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중고 거래는 피규어와 같은 특정 취미를 가진 마니아층이 주도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성별 연령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중고거래에 참여하고 있다. 거래하는 제품의 종류 또한 다양해지며 중고거래는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낡은 물건? No! 레어템 Yes! 중고품에 대한 인식 바뀌어

우선 중고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중고품 구입은 ‘남이 쓰던 헌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닌 또 하나의 ‘소비 트렌드’가 되었다. 중고 의류로 자신만의 패션 센스를 드러내기도 하며 레어 아이템을 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MZ 세대에 있어 중고거래는 합리적인 소비이면서 동시에 친환경에 기여하는 새로운 유통 채널이다.

또한 저성장 시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절약 정신이 강해진 점도 중고거래 시장 확대의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부모님 세대만큼 월급이 오르고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중고품을 사용하는 것은 한정된 자원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현명한 소비 전략이다.

중고거래 불편함은 사라지고, 신뢰성은 쑥쑥

마지막으로 스타트업들이 대거 등장하며 중고거래의 불편함을 해결하였다. 내 방에 잠자고 있는 중고 물건이 필요한 사람을 찾는 것이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사는 동네를 인증하여 택배로 인한 사기 위험을 줄이거나 투명 박스를 통해 물건을 살피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여러 대응책을 마련하였다. 이제 중고품도 신뢰하고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역 기반 중고거래는 이미 글로벌 트렌드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중고거래 시장의 확대에 기여할 것이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불필요한 물건을 처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해 조금이라도 용돈벌이를 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또한 당근마켓으로 대표되는 하이퍼로컬 마켓의 성장은 세계적인 트렌드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여행이 제한되고 생활 반경이 좁아지면서 동네 생활권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밀착형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사용자 위치를 기반으로 가까운 지역 주민과 연결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로컬 플랫폼의 인기는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중고거래 시장이 앞으로도 성장할 것이라 전망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중고 시장을 둘러싼 경쟁 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중고거래 업체들은 앞으로 어떻게 수익성을 높이고 자사의 비즈니스를 차별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수익성에 고민하는 중고거래 플랫폼들은 로컬 커머스나 배송 사업으로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여전히 성장하고 진화하는 일본 중고거래 시장

잠시 중고 시장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성숙기에 접어든 일본 시장을 들여다보자. 장기간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일본에서 현재 유일하게 성장하는 유통채널은 중고거래 시장이다. 일본의 중고거래 시장 또한 다양한 사업자들이 경쟁하고 있는데, 최근 이들은 시장의 전체 파이를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2018년 추정한 자료에 의하면 1년간 일본 국민 누군가에게 필요 없게 된 제품의 가치를 약 7조 6,000억 엔 (한화 약 79조 원)으로 보고 있다. 2020년 일본의 중고거래 시장이 26조 원 규모인데, 현재 시장의 2배 규모인 약 50조 원의 시장이 아직도 개척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50조 원을 잡기 위해 일본 업체들은 소비자층을 확대하거나 다양한 부가 서비스와 결합하는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인생 황혼기를 중고거래와 함께

일본 최대의 C2C 중고거래 앱을 운영하는 메루카리(Mercari)는 특히 고령층에 주목하며 이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미개척된 50조 원의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가정에 있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메루카리와 함께 준비하자”라는 캠페인에 반응하는 고령자들이 많다. 자신들의 집에 잔뜩 쌓인 쓸모없는 물건을 출품하는 것은 집 안뿐만 아니라 신변 정리도 된다. 누군가 자신의 오래된 골동품을 사주는 것이 재미있다며 중고거래에 빠져드는 고령자들이 늘고 있다.

이사 서비스와 중고거래의 만남

오프라인 점포를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중고거래 업체인 트레져 팩토리(Treasure Factory)는 이사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중고 거래 물품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경우는 언제일까? 바로 집을 이사할 때일 것이다. 트레져 팩토리는 고객의 필요 없는 물건을 매입해 주는 서비스와 이사 서비스를 결합한 것이다. 이사를 예정하고 있는 집을 사전에 방문하여 매입 가능한 물건들과 가격을 감정하고, 물건의 매입 금액을 이사 서비스 금액에서 공제하는 것이다. 고객은 팔고 싶은 물건을 일일이 판매하지 않아도 되며 필요 없는 물건을 이사 가기 직전까지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전국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1년 내 중고거래 경험이 있다’는 사람이 64%로 조사되었다. 이제는 중고거래 경험이 없는 36%의 사람들을 중고거래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중고거래에 참여하고 있는 64%의 세세한 니즈를 파악하고 서비스를 개선하거나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여 수익성을 높이는 것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잠시 집 안을 둘러보자. 지난 1년간 한 번도 사용 안 한 물건들이 눈에 띌 것이다. 중고거래 비즈니스는 더욱 성장할 여지가 있는 시장이다.


정희선

일본의 경제정보 서비스 플랫폼인 유자베이스 (UZABASE)에서 비즈니스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한국에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책 <사지 않고 삽니다>와 <라이프 스타일 판매 중>을 출간하였고,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콘텐츠 플랫폼인 퍼블리(PUBLY), 매거진 패션포스트 등에 트렌드 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미국 Indiana University의 MBA 과정에서 마케팅을 전공하였으며, 우리 생활에 밀접한 소비재와 리테일 산업을 주로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