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원_대학내일 디지털콘텐츠 마케터

EBS의 ‘펭수 세계관’과 빙그레가 쏘아 올린 ‘빙그레우스 세계관’이 흥행한 후로 정말 다양한 브랜드에서 세계관 마케팅을 시도해 왔다. 콘텐츠가 재미있고, 소비자들도 좋아하던 세계관 놀이였기에, 용기 있는 브랜드 마케터들은 저마다 ‘이때다!’ 싶었을 것이다.

브랜드 SNS 마케팅 담당자들이 핫한 콘셉트에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세계관 마케팅이 만능키는 아니다. 세계관 마케팅을 고민하기 전 먼저 체크해야 할 점 4가지를 준비했다.

1. 브랜드 팔로워와 소통이 잘 되고 있는가?

세계관 마케팅이 모든 브랜드에게 어울리는 전략은 아니다. 세계관 콘텐츠가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생각보다 다각도로 촘촘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세계관을 내놓는 브랜드들은 저마다 표현 방식이 새롭고, 콘텐츠를 보는 소비자들의 안목은 갈수록 높아져서 이제 어지간한 과몰입으로는 화제성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꼭 해보고 싶다면, 우리는 세계관 마케팅이란 전략의 본질을 먼저 알아보고 과연 우리 브랜드와 궁합이 맞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출처: 펭수 인스타그램 @giantpengsoo)

‘펭수’의 정체를 세계관 설정값에 따라 ‘남극에서 온 10살 펭귄’이라며 그 세계관을 지켜주려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듯, SNS 유저들에게 세계관 콘텐츠는 재미있으니까 같이 놀기 위해서 속아준다, 일종의 ‘놀이’인 셈이다. ‘같이 놀기 위해서’와 ‘재미를 위해 속아준다’에 주목해야 하는데, 기꺼이 소비자들이 브랜드가 깔아놓은 판에서 함께 놀아야 세계관 마케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담당하는 브랜드 SNS에서는 콘텐츠 소비자와의 활발한 놀이가 가능한가? 소비자들과 댓글 소통은 잘하고 있는가? 그들이 여러분이 차린 판에 속아줄 만한 사람들인가?

평소 콘텐츠에 내부인 댓글 외에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지 않다면? 새롭게 세계관 마케팅을 시작해도 외면받을 확률이 높다. 세계관을 갖는다는 건 콘텐츠와 채널이 특색을 갖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갑분세(갑자기 분위기 세계관)’에 의아함을 느낀 원래 콘텐츠 소비자층까지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엔 본 계정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먼저 키우고 나서 세계관을 시작하거나, 세계관 전용 계정을 새로 열어서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일 수 있다.

2. 스토리텔링이 준비돼 있는가?

세계관 마케팅을 시작할 때 꽤 많은 브랜드들이 하는 실수가 있다. 컨셉과 론칭 아이디어만 갖고 세계관 마케팅을 시작하는 경우다. 세계관은 등장했지만 그 후 이야기가 뚜렷하지 않고 지지부진한 콘텐츠로 이어진다면 사람들은 빠르게 흥미를 잃는다. 그래서 세계관 마케팅을 할 때는 화제몰이를 할 만큼의 컨셉과 덧붙여 이야기를 이끌어갈 탄탄한 플롯이 필요하다. 이야기에 서사가 없다면 아마도 여러분의 세계관은 금세 소재 고갈에 허덕이게 될 것이고 이야기의 흥미가 떨어진다면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다. 스토리를 길게 끌고 갈 필요는 없다. 짧고 강렬한 플롯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게르과자 랜선파티(좌) 이벤트 멘트 하나도 컨셉에 진심인 DM(우)
(출처: 빙그레 인스타그램 binggraekorea)

근래,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빙그레 끄랍칩스 세계관은 겨우 27개의 콘텐츠를 약 2달에 걸쳐 발행했지만 데뷔부터 마지막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빙그레는 꽃게랑이 러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마피아를 연상케 하는 회사 ‘게르과자 인터내셔널’과 대표이사 ‘게르과자 마시코프’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가상의 회사가 러시아 국민 스낵인 끄랍칩스를 한국에 진출시키는 시나리오로 세계관을 만들었다. 이 세계관은 외국인의 어눌한 한국어 말투까지 세계관의 일부로 설정하고,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한국 진출 성과 발표회까지 개최하는 등 세계관 과몰입의 진수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제품 패키징까지 바꿀 정도로 디테일에 진심이었던 그들의 세계관에 사람들은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스토리를 연장하지 않고 깔끔하게 캠페인을 종료한 것도 완성도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여러분이 세계관 마케팅을 펼치기 좋은 생각이 났다면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냉정하게 이 세계관에서 어떤 이야기를 어느 정도 기간에 걸쳐 할 수 있을지 체크해보자. 이야기를 어떻게 타당성 있게 이어갈 수 있을지, 그리고 이야기의 중간마다 방점을 찍어줄 수 있는 이벤트성 콘텐츠는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정리해 보자. 콘텐츠를 한 두 개 올리고 끝낼 것은 아니니 말이다.

3. 캐릭터 개발 예산이 있는가?

세계관 콘텐츠를 시도해보자는 브랜드들이 실행 예산을 보고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일러스트 부캐 ‘휴공주’와 버추얼휴먼 ‘로지’
(출처: 밤의 오떼르 인스타그램 @hauteur_the_night/ 로지 인스타그램@rozy.gram)

결국, 세계관 마케팅도 예산이 큰 문제다. 우선, 세계관 콘텐츠 표현 유형에 따라 제작비가 달라진다. 예컨대 콘텐츠 유형이 사진이냐, 일러스트냐, 그래픽이냐에 따라 제작비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요즘엔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주목을 받으면서 세계관 페르소나를 롯데백화점의 ‘오떼르’처럼 일러스트로 할 건지 싸이더스의 ‘오로지’처럼 그래픽으로 제작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브랜드도 더러 있는데, 두 유형은 콘텐츠 제작비가 크게 차이 날 수 있다. 콘텐츠 수량을 줄여 발행 간격을 늘릴 수도 있지만, 발행 간격이 길어지면 컨셉에 대한 반응도 줄어든다.

세계관 도입 콘텐츠들은 제작비와 별도로 세계관을 알리기 위해 콘텐츠 게시물 광고비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 주어진 예산에 맞는 실현 가능한 최선의 크리에이티브와 실행 플랜을 중심으로 세계관 마케팅에 도전하는 편이 좋겠다.

4. 컨셉이 고민이라면? SNS에서 잘 되는 콘텐츠의 본질로 되돌아가자

콘텐츠 기획 강의를 할 때마다 ‘정보’, ‘공감’, ‘재미’, 이 3가지가 SNS 콘텐츠의 핵심 요소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콘텐츠에서 전달해야 할 ‘정보’는 제품으로 항상 존재한다. 이 정보를 타깃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의 시선에서 기획하고(공감), 그들 시선에 좋아할 만한 표현으로 만들면(재미)? 소비자들은 콘텐츠에 반응하기 마련이다. 세계관 마케팅에 사용되는 콘텐츠도 결국 제품을 타깃이 공감하는 이야기로,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느냐로 성패가 나뉜다.

본질은 결국 타깃이 흥미를 갖고 정보를 볼 수 있게끔 ‘어떻게 표현하는가’이다. 타 브랜드에서 하니까 우리도 하자는 마음으로 세계관 마케팅을 도입하기보다는, 우리 채널에 맞는 컨셉을 알아내기 위해 브랜드 팬들과 다양한 콘텐츠로 소통을 시도해 보길 바란다. 세계관 마케팅도 결국엔 놀이다. 우리가 깔아둔 브랜드 SNS라는 판에서 사람들이 먼저 놀게끔 만들어 보자. 세계관 이전에 먼저 친해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


서준원

대학내일 디지털콘텐츠팀에서 다양한 브랜드의 소셜미디어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미디어 퍼블리에서 SNS 세계관 만들기, 메타버스 활용팁 등 시리즈 칼럼 등을 기고하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SNS 트렌드에서 브랜드는 어떻게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