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섭 트렌드 분석가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한국에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들어온 건 1982년, 서울 약수시장 앞에 개점한 세븐일레븐 1호였다. 24시간 내내 운영된다는 것은 당시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24시간 담배가게 느낌으로 시작한 편의점은, 어느샌가 김밥과 도시락을 먹는 식당, 각종 밀키트를 파는 매장, 다양한 편의점 음식을 각자의 입맛으로 재조합한 모디슈머의 활동 거점이 되었으며, 동네 맥주 맛집이 되어 삼삼오오 모여드는 친구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택배를 받는 택배영업소는 기본, 은행 업무까지 일부 이뤄지는 간이 은행을 하기도 했으며, 와인이나 위스키 마니아들을 오픈런하게 만드는 전문점 역할까지 맡고 있다. 편의점은 또 뛰어난 접근성으로 아이돌 앨범과 야구 포토카드를 비롯한 각종 팬 굿즈 판매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최근엔 외국인들의 K 쇼핑 핫플레이스로도 자리 잡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편의점을 필수코스로 여기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명동에 있는 세븐일레븐은 매출이 3배가 수직 상승했다. 편의점에서의 알리페이 결제량은 수년 전부터 계속 급증세였는데, 팬데믹 기간 잠시 주춤하다가 엔데믹이 된 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과거와 달리 특정 동네뿐 아니라 서울 전역으로 이동하고, 지방으로도 이동하는데 이제 전국 어느 편의점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을 만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CNN에서 한국의 편의점을 아주 놀랍고 신기하고, 트렌디한 장소라며 비중 있게 소개하기도 했다. 의자도 많고, 전자레인지나 온수 등 음식을 조리해서 먹기도 좋고, 현금 인출은 물론 외환 서비스도 가능한, 뭐든 다 이뤄지는 원스톱 서비스가 그들은 놀라웠나 본데, 사실 우린 10년 전에도 그 정도는 기본이었다. 확실히 한국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커지고, K 푸드와 K 문화가 SNS에서도 왕성하게 다뤄지다 보니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했던 것이 그들의 눈엔 아주 신기해 보였나 보다. 그만큼 우린 세계에서 가장 진화된 편의점을 누구나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다.

세계 최초의 편의점은 1927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시작한 세븐일레븐이지만, 이걸 인수해 전 세계적 프랜차이즈로 만든 건 일본이다. 약 50년 동안 일본에서 확산되고 진화하며, 일본은 편의점의 나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그동안의 편의점이 보여준 모든 진화는 일본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편의점의 새로운 진화는 한국에서 주도한다.

일본프랜차이즈협회에 따르면, 2024년 5월 기준 일본 내 편의점 수는 5만 5641개다. 한국편의점협회가 밝힌 2023년 연말 기준 국내 편의점 수는 5만 5580개다. 일본은 2021년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세인 반면 한국은 2021년 5만개 돌파 이후 매년 1~2000개씩 늘고 있다. 2024년 상반기의 최소 증가분만 반영해도 한국이 일본의 편의점 수를 넘어선다. 인구는 일본이 2.5배 정도 많다. 한국은 편의점 1개당 인구 950명 정도인데, 편의점의 나라로 불렸던 일본이나 편의점 수가 가장 많은 미국은 1개당 2000명 이상이다.

편의점은 이제 동네마다 포진한 모든 오프라인 유통의 융합 모델이자, 온라인 유통과도 연결된 라이프스타일 거점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편의점의 진화를 다루는 기사나 리포트는 10년, 20년 전에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편의점의 진화를 다루는 칼럼을 10년 전에도 썼었고, 트렌드 분석서에서도 편의점의 진화를 비중 있게 다룬 지도 오래 전이다.

그만큼 편의점은 시대의 변화를 가장 발 빠르게 적용시키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작지만 빠른, 그것이 편의점이 지금처럼 강력해진 가장 큰 힘일 것이다. 오프라인 유통 빅3 부문(백화점, 편의점, 대형마트) 중 1위는 늘 백화점이었는데 이제 편의점이 매출에서 턱밑까지 쫓아왔고, 아마(수년간의 추세로 볼 때) 올해가 지나면 역전했다는 뉴스가 나올 것이다. 편의점이 대형마트를 넘어선 건 오래 전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편의점이 진화한 곳이 바로 한국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많은 것이 사라졌다. 카메라, 디지털 녹음기, mp3 플레이어 등은 과거엔 각자 존재하며 팔리던 상품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모든 걸 다 구현하다보니 더 이상 개별 기기가 팔리지 않았고, 앱이 스마트폰의 기능을 확장시키는 동안 각자 역할을 하던 기기들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편의점도 마찬가지다. 지역 곳곳을 세밀하게 연결한 오프라인 네트워크는 편의점만의 독보적인 강점이다. 편의점이 가진 원스톱 서비스는 금융과 소매 유통, F&B, 각종 생활 서비스 산업을 끌어들이며 더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별 게 다되는 편의점으로 진화할 수록 오프라인의 수많은 상점들은 존재 가치를 잃어간다. 오프라인 유통의 블랙홀이자 골목상권의 멀티플레이어가 바로 편의점이다.

어쩌면 전 세계가 만날 미래의 편의점을 이미 한국에선 현재에 만나고 있다. 적어도 편의점의 진화에서만큼은 우린 지금 전 세계인의 미래를 산다. 편의점이 AI나 로봇으로 본격 운영되는 미래도 한국에서 먼저 만날 것이다. 우린 지금 편의점의 나라에 살고 있다. 한국은 1인 가구 비중이 전국민의 1/3이 넘고, 65세 이상 인구도 1/5이 넘는다.

1인 가구가 편의점에서 장 보듯, 노인인구도 멀리 장 보러 가기보단 집 가까운 편의점에서 원스톱 서비스를 이용한다. 일본이 먼저 그렇게 되었고, 우리도 지금 그렇게 되어간다. 편의점이 점점 더 커질 이유는 충분히 많고, 편의점 업계는 진화를 하며 더 성장하려 한다. 그렇기에 진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용선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과 정부기관에서 3000 회 이상의 강연과 워크숍을 수행했고, 트렌드 전문 유튜브채널 ‘김용섭 INSIGHT’를 운영한다. 저서로 『라이프 트렌드 2025 : 조용한 사람들』, 『라이프 트렌드 2024 : OLD MONEY』, 『프로페셔널 스튜던트』, 『언컨택트』,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