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임태진 CD (임태진CD팀)
돌이켜보면 2020년은 그야말로 대혼란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석 달, 길면 6개월 정도 고생하겠다 싶었는데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었네요. 이런 상황에도 사회가 돌아간다는 게, 인간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같이 모여서 아이데이션을 하고 다 같이 모여서 PPM을 하고, 1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모여 촬영을 하는 광고 업계도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그게 되겠어? 라고 생각했으나… 그걸 또 해내네요. 인간의 적응력은 정말 굉장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일상, 아직은 낯선, 비대면 회의
제작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짚어보면 우선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아이디어 내는 일이 직업이면 어디서든 아이데이션만 하고 있으면 됩니다. 극장에서 영화도 보고 만화책도 보고 이것저것 콘텐츠 소비를 하는 게 업무의 연장선상인데, 그게 코로나19로 인해서 본의 아니게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모든 게 해피하지는 않습니다. OT도 가능하면 메신저나 화상 회의로 단출하게 하고 각자 재택과 출근을 잘 조율하면서 아이데이션을 합니다. 비대면으로 진행하다 보니 OT를 주는 입장에서도 많이 고민하고 회의를 준비하게 됩니다. ‘느낌적 느낌’이라는 게 비대면으로는 전해지지 않으니 최대한 꼼꼼하게 CD가 생각하는 방향을 정리해야 합니다. 전에는 만나서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방향을 잡아나가던 일을 CD 혼자서 고민하고 압축해서 전달해야 하니까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부담도 큽니다.
팀원 입장에서도 쉽지 않을 겁니다. OT 후 팀원들이랑 같이 밥 먹고 커피도 마시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나누면서 많은 부분이 정리되는데 집에서 혼자 고민하다 보니 여러모로 쉽지 않죠. 외로운 싸움입니다. 출근해서 일하는 것보다 몸은 조금 편할지 몰라도 더 힘들고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팬데믹 초기에만 해도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날만큼은 직접 모여서 회의를 했었는데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화상회의로 아이데이션을 진행하게 되더군요. 물론 힘듭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데이션을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괜찮은데 정리하는 사람은 고역입니다. 각자 아이디어를 다 듣고 종합해서 정리하는 회의를 비대면으로 한다는 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광고주 보고도 여름 이후부터는 거의 80% 이상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간혹 꼭 만나서 논의해야 하는 회의가 있다면 최대 3명 정도로 인원을 제한해서 짧게 미팅하곤 하죠. 어쩌면 코로나가 끝나도 많은 부분은 메일이나 컨퍼런스 콜 정도로 진행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광고 촬영에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문제는 촬영입니다. 보통 일반적인 TVC 촬영에는 최소 100명 이상의 스태프가 필요합니다. 촬영, 연출, 조명, 아트, 모델, 등등하면 100명은 가뿐히 넘어가죠. 단계별로 다르긴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촬영 제한 인원이 50명 이하로 되면서 촬영장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먼저 방역을 담당하는 크루들이 5명 정도 옵니다. 촬영장도 철저하게 방역하고 출입하는 스태프들의 발열 체크 및 인원 체크도 담당하고 50명이 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죠.
촬영에 필요한 스태프의 수도 최소화합니다. 세 명이 할 일을 두 명으로 줄이는 식이죠. 촬영 콘티를 짤 때도 촬영 여건을 최대한 고려하고, 어쩔 수 없이 규모가 커진 촬영의 경우 팀을 나눠 A 팀, B 팀으로 운영하기도 합니다. 또 스튜디오 두 군데를 빌려서 이동하면서 찍기도 하고, 촬영 일수를 조절해서 진행하기도 합니다. 편집이나 후반 작업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진행되고 여러 촬영장을 동시에 출입하는 스태프들도 철저하게 관리합니다. 밥차나 간식 같은 경우도 도시락 등으로 대체해 진행되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방역에 최선을 다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적응력, 순발력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변화가 일 년 사이에 일어났다니요.
만나지 않아도 알려요, 체험 마케팅의 진화
반면 Brand Experience, 즉 체험 마케팅 쪽은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행사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그러나 역시 사람들은 방법을 찾아가죠. 행사 자체를 영상 콘텐츠로 제작하고 Youtube 온라인 생중계로 송출합니다. 체험 마케팅의 핵심은 행사에 온 일반 소비자 뿐 아니라 행사를 취재하러 온 기자나 인플루언서들이 콘텐츠를 재생산할 수 있게 제품이나 부스 등을 제공하는 일, 다양한 목적을 가진 체험존들에 있는데,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코로나19 시대의 체험 마케팅은 기존의 진행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목적을 담당하는 영상의 형태로 구성됩니다. 직접 물건을 만져볼 수 없으니 직접 소비자가 언박싱 하고 실 제품을 만져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핸즈 온이라는 체험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프리젠터가 직접 전달하던 내용을 조금 더 온라인 영상에 맞게 드라마틱 하게 구성하는 영상 콘텐츠도 구성되고, 부분 부분 잘라서 테크 유튜버들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술 중심으로 집약된 영상들도 기획되고 제작됩니다.
오프라인 행사의 목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온라인용으로 재생산된 콘텐츠들을 새롭게 기 획하는 거죠. 기존 일반적인 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획되고 제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만큼 힘든 작업이 됩니다. 그래도 역시 사람들은 대단합니다. 그걸 또 해냅니다. 여차저차 머리를 맞대고 오늘도 열심히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광고 회사는 늘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잖아요.
제일기획 임태진 CD (임태진CD팀)
본 칼럼은 ‘The AD 제 137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