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는 말을 달고 사는 것이 현대인들이다. 우리는 정말 시간이 부족한 걸까?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우리가 언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그 순간을 제대로 직시하면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심리학자들의 답은 한결같이 “계획 오류”다.

 

빗나간 예측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는 심리학에서 수십 년간 연구해 온 현상 중 하나로서 ‘언제까지 무엇을 얼마만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예측이 틀리는 경우 사용하는 표현이다. 계획 오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분야에서 매일같이 일어난다. 실제로 그만큼의 달성이 어려운데도 막연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낙관적 기대에 의해 시작했다가 나중에 낭패를 보는 모든 경우를 말한다.

이럴 경우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 무엇이겠는가. 그 목표 시점, 즉 데드라인이 가까워지면 그제야 시간과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많은 일들을 허둥지둥대면서 동시에 하려고 하는 것이다. 당연히 제대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바로 이때가 ‘시간이 부족하다’는 압박감이나 스트레스를 가장 심하게 겪는 순간이다. 게다가 어떻게든 그 일 중 일부가 마무리가 돼도 최초 예측과는 달리 결과물이 많이 저조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일들이 일상생활에서 자꾸 반복되다 보면, 직장인은 직무 만족도가 떨어지고 학생들은 초조해지며 그로 인해 이어지는 다음 일이나 공부에 대해서도 의욕이 떨어진다. 이러한 오류는 정부, 기업, 심지어는 친목 단체 등 어디든 존재하며 그 낭패의 후유증으로 구성원들 간 다양한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계획이 없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낙관적 예측과 그에 따른 실패를 맛보게 될까? 이 질문을 다시 바꾸면 ‘어떻게 하면 시간이 없다는 푸념을 하게 되는 상황을 사전에 막을 수 있을까’가 된다. 심리학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이런 표현이 있다. 계획과 목표를 혼동하지 말라.” 이 말은 목표를 세워 놓고 그것이 계획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 일을 완성할 수 있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과 목표를 하나로 묶어서 봄으로써 빚어지는 실수들을 뜻한다.

예를 들어 보자.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있을 집들이를 준비하는 새내기 주부가 있다. 그 준비를 하면서 “저녁 전까지 집들이 준비를 마치자.”라고만 마음먹으면 시간의 잣대도 하나(오늘 하루)이고, 목표도 하나다(집들이 마치기). 목표가 하나밖에 없으니 ‘그거 하나 못하겠어?’라는 낙관적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그 최종 목표를 위해 해야 할 세부적인 일들, 예컨대 국, 다양한 반찬들, 밥, 후식으로 사용할 과일 등과 심지어 청소까지 모든 준비가 하나의 시간 잣대와 목표에 숨어 들어간다. 그러니 여기서 일의 경중이나 우선순위는 구별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개별적인 각각의 일들을 처리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드는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재치 있는 주부라면 이렇게 하지 않겠는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무언가 간단한 작업을 하나 한다. 즉 오늘 할 일들을 종이 한 장에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렇게 써 내려가면서 일의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연관성 있는 일들을 서로 엮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시간 잣대와 하나의 목표는 여러 개의 시간 구간과 세부 목표들로 바뀌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하면서 허둥지둥하게 되는 현상을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게 되고, 차근차근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상당 부분 원천봉쇄 된다.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 놓자
개인이든 조직이든 시간이 없고 조급해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려고 허둥지둥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그 혼란스러움 역시 낙관적 기대에 의한 계획 오류의 결과에 더 가깝다. 따라서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주위에서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여유를 가지세요”라고 조언한들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을 여러 가지로 쪼개야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보따리를 푸는 것에 비유해 ‘언패킹(unpacking)’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있는 하위 목표들로 다시 열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언패킹은 말 그대로 일을 다 구분해 놓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티태스킹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출근하자마자 오늘 할 일들을 무작위적으로 떠올리며 수많은 창을 컴퓨터 화면에 띄운다. 한번쯤 돌아보시라. 지금 컴퓨터 화면에 몇 개의 창이 띄워져 있는가? 10개 가까운 수의 창이 띄워져 있는 직장인들이 부지기수다. 실제로 필자가 서울 시내에 있는 한 회사의 사무실에서 근무 중인 분들의 컴퓨터 화면을 조사해 보니, 평균적으로 8.4개의 창을 열고 있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은 언패킹해서 하나씩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

심리학자로서 단언 드릴 수 있다. 어떤 목표를 이루려면 그 목표를 최대한 구분해 각각의 일에 ‘언제까지’라는 시간의 데드라인까지 정해 놓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까지 해야만 계획이라고 부를 수 있다. 게다가 이렇게 함으로써 가질 수 있는 더 중요한 측면이 하나 있다. 이렇게 일을 쪼개고 집중하는 과정에서 성취감 역시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의 제목 하나만 덩그러니 가지고 있으면 오늘의 결과는 0점인 실패 아니면 만점인 성공이다.

하지만 그 제목을 명확한 데드라인들을 각각 붙여 10개로 쪼개어 놓으면 나의 오늘 하루에 대한 점수는 100점 만점에 70점, 80점, 혹은 90점도 부여할 수도 있다. 나머지 점수는 재빨리 다음 날 획득하면 된다. 그러니 성취감과 일의 연계성 역시 덤으로 가져올 수 있다. 이런 걸 굳이 어려운 말로 ‘자기 동기 부여’라고 하는 것 같다.

 

*김경일은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며 국내의 대표적인 인지심리학자이다. <어쩌다 어른>, <속보이는TV 人사이드>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