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또 정착되고 있다. 그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뉴트로(Newtro)다. 전 세계 경제를 암울하게 만든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은 기업이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재해석하는 트렌드에 집중하는 것은 왜일까?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복고 감성이 곁들여진 상품들이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복고의 핵심에는 추억이 있고, 추억은 ‘과거의 것이지만, 미래의 에너지도 만든다’는 연구들이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행위가 현재와 미래의 동력이 되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까? 이른바 ‘과거의 힘(Power of past)’, 즉 향수(鄕愁)가 에너지를 만든다는 이 역설적 현상을 연구해 온 대표적 학자가 영국 사우스햄턴 대학의 심리학자 제이콥 율(Jacob Juhl) 교수다. 그를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은 긍정적 과거 중 특정한 유형을 회상하는 행위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위해 주목할 만한 에너지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는 행위가 에너지로 전환되는 걸까? 상식적으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과거의 좋은 기억을 우리는 향수라고 한다. 향수, 즉 노스탤지어는 사전적으로는 긍정적인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뜻한다. 그런데 이 향수에는 단순히 그리움만 포함돼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과거를 다시 한 번 경험하고픈 소망이 기저에 깔려 있다. 그 소망은 당연히 미래를 위한 중요한 힘이 된다.
제이콥 율 교수는 이 같은 사실을 실험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그와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걸어온 과거를 회상하게 했다. 참가자들 절반에게는 ‘아, 그때가 좋았어!’라고 할 만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특정한 시점을 정해주고 그 시점 전후로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게 했다. 전자는 향수를, 후자는 단순한 일상적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후 두 그룹 모두에게 다양한 과제를 부여했다.
그 과제 중에는 혼자 열심히 하면 되는 일도 있었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타인과의 협력이 필요한 일들도 있었다.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긍정적 과거를 떠올렸던 사람들은 유독 협력적인 일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몰입했고, 잘될 수 있다는 신념도 더 강하게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과제 수행 결과도 우수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향수 자극의 효과가 다른 사람들과의 협동이 필요치 않은 과제, 즉 나만을 위한 일에 있어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또 다른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과거의 긍정적 경험을 좀 더 구체적으로 쓰게 했다. 한 그룹에게는 단순히 과거의 좋은 일을, 다른 그룹에게는 다른 사람과 있었던 좋은 일을 쓰도록 했다. 이미 그 결과를 눈치챈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실험은 협동을 극대화시켰다. 전자도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더 타인과의 협력을 촉진시켰지만, 후자의 조건에서는 거의 최고 수준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과 공감이 이뤄졌다. 이 결과가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과거에 다른 사람들과 보람을 느끼면서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기억’을 되새길 수 있다면 미래를 위해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힘을 심리학에서는 효능감(efficacy)이라고 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과거의 수많은 기억들 중 이 효능감을 다시 되살리는 데 요긴한 실마리를 찾고 있다. 그것이 뉴트로에 반영된 것이다. 특히나 요즘과 같이 미래가 막막하고 불안한 코로나19 시대에는 더욱 절실하게 말이다.
이제 뉴트로의 기능은 분명해졌다. 뉴트로는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긍정적 시간을 떠올리게 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뉴트로를 소비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현재와 미래에 공존하고 협동하고자 하는 에너지를 얻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인지 코로나19 이후의 최근 뉴트로는 유난히 먹을거리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중 하나였던 태극당의 팝업 스토어나 남대문 시장을 상징하는 김진호 호떡의 리브랜딩인 미구당, 이마트가 추억의 먹거리인 냉동 삼겹살과 옛날 통닭 등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뉴트로 기획전, 이 외에도 맥심, 델몬트, 칠성 사이다 등에서 선보인 과거 브랜드 디자인의 한정판 판매 상품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비싸지 않기에 부담 없이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었던 추억의 먹거리라는 점이다.
▲ 태극당 ⓒ taegeukdang.com
그러니까 우리는 뉴트로를 통해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같이 일하고 같이 놀, 공존과 협동의 동반자들 말이다. 코로나19로 불안한 우리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해 왔다. 엘리베이터에 있는 옆 사람과도 평소보다 거리를 더 둔다. 택배로 온 물건도 가급적 비대면으로 받는다. 방역 차원에서 봤을 때는 올바른 행동들이다. 하지만 그 거리 두기를 통해 멀어진 것은 바로 사람 아니겠는가.
그로 인해 우리는 나와 같이 호흡하면서 같은 목표를 향해 줄 동반자들을 마음속으로 원하게 됐다. 실제로 저렴한 뉴트로 제품일수록 오프라인에서든 온라인에서든 주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공유하면서 즐거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뉴트로는 주위 사람들과 ‘연결’을 만들어 낸다. 반면에 명품은 나를 돋보이게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립시킨다.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행동경제학자 크리스토퍼 씨(Christopher Hsee) 교수는 그래서 “프라다는 사람을 타인들로부터 고립시킨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적도 있다.
그렇다면 뉴트로는 결국 사람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이런 재미있는 가정도 해 볼 수 있다. 단순한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예전의 소중한 만남, 관계, 그리고 보람 있는 성취를 같이 묶어 절묘하게 구현한 제품이 나온다면 완판 신화를 훨씬 더 빠르고 쉽게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김경일은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며 국내의 대표적인 인지심리학자이다. <어쩌다 어른>, <속보이는TV 人사이드>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