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_바이라인네트워크 기자
칸 영화제처럼 한 해 동안 가장 성공한 테크 서비스에 수상하는 시상식이 있다면 올해의 가장 유력한 후보는 챗 GPT였다. 그러나 황금종려상은 하반기를 휩쓴 스레드(Threads)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스레드는 특히 ‘웹 3.0 시대 소셜 미디어’의 원형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스레드가 대체 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웹 3.0라는 것이 뭐가 그렇게 특별한 것인지 이야기해보겠다.
메타는 왜 스레드를 만들었을까
메타(구 페이스북)는 스마트폰 초창기 시절 앱 설치 없이도 앱처럼 동작하는 웹 앱으로 페이스북을 제작할 정도로 뛰어난 웹 기술을 가진 업체였다. 그러나 페이스북 웹 앱은 실제로 출시되지는 않았다. 애플이 ‘iOS 계정 연동’이라는 수를 페이스북에 내밀었기 때문이다. 지문 인식조차 없던 시절, OS에 페이스북 계정을 저장해 놓는 것만으로도 아이폰에서의 페이스북 활용도가 매우 높아졌다. 매번 계정과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후 페이스북은 웹보다는 앱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가 됐다.
그러나 애플은 어느 순간 이 손을 뿌리치고야 말았다. iOS 14.5에서 앱 추적 투명성(ATT, App Tracking Transparency) 기능을 도입하며 사용자 정보를 개별 앱이 가져가도 되는지를 묻게 했다. 이 문구가 미묘하게 부정적이라 사용자 대부분은 정보를 가져가지 말라는 선택을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프로그래머틱 광고 사업자다. 사용자 정보를 많이 갖고 있을수록 더 정확한 타깃팅 광고를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애플은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메타의 주 수입원을 틀어막아 버렸다.
메타는 이후 여러 사업을 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플랫폼 역량이 없다는 것에 착안해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었고, 사명도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바꾸었다. 챗 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 AI가 등장하자, 스마트폰 CPU로도 쓸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만든 생성 AI ‘라마(LLAMALLaMa)’를 공개하기도 했다. 젊은 기업답게 기술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하는 셈이다.
5일만에 사용자 1억명 모은 스레드
그 다음 출시 제품이 바로 스레드였다. 스레드는 트위터를 똑 닮은 모습의 소셜 미디어였다. 소셜 미디어로 잔뼈가 굵은 메타답게 첫 출시부터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했으며, 5일 만에 1억 명의 사용자를 끌어모았다. 챗 GPT보다도 훨씬 빠른 기록이다.
출처 : 메타 홈페이지
스레드가 빠르게 사용자를 모은 가장 큰 이유에는 인스타그램 계정 연동이 꼽힌다. 별다른 절차 없이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바로 가입이 가능했고, 자신의 팔로워를 그대로 가져올 수 있었다. 월간 20억 명에 달하는 활성 인스타그램 사용자 그대로 유치할 수 있으니 초반 기록이 좋은 것은 당연했다.
트위터에 대한 피로감도 이유로 꼽힌다. 사실상 익명에 가까운 트위터에서는 정치 · 경제 등을 주제로 논쟁이 오가게 되는데, 이런 대화를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꽤 많았기에 스레드를 선택하는 사람도 많았다. 실제로 CEO인 아담 모세리(Adam Mosseri)는 스레드 출시에 앞서 “스포츠, 음악, 패션, 뷰티, 엔터테인먼트 등 정치나 어려운 뉴스를 다루지 않고도 활기찬 플랫폼을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밝힌 바 있다.
출처 : 메타 홈페이지
일각에선 스레드가 큰 인기를 끌었으나 금세 관심을 잃은 ‘클럽하우스’처럼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서비스의 완성도나 편의성은 우수하지만, 콘텐츠(가입자들의 멘션)를 주고받는 방식이 트위터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레드에는 몇 가지 무기가 더 있다. 해시태그, 동영상(릴스) 등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기능들이 아직 도입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학계 · 정치 · 경제 명사보다 핫 피플이 많다는 것이 강점이다. 사용자 분류가 약간 다르다는 점에서 스레드에게도 여전히 기회가 있다.
스레드의 진정한 의미는 ‘액티비티 펍’
현재는 핫 피플이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 강점이지만, 개발 측면에서 스레드의 강점, 장기적인 강점은 스레드가 ‘탈중앙화’ 혹은 ‘정보 소유 주체 이전’과 같은 미래 인터넷 철학을 전제로 개발됐다는 점이다. 웹 3.0을 표방하는 곳은 많지만 실제로 거대 인터넷 기업이 웹 3.0을 전제로 서비스를 만든 것은 최초에 해당한다. 모든 테크 공룡이 사용자 정보를 쥐고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메타는 빅테크 중 가장 악독하게 정보를 파헤치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스레드는 탈중앙화를 목표로 설계됐다. 이른바 웹 3.0의 정신을 따른다는 것이다. 과거 게시물을 만드는 것과 노출시키는 것을 가장 쉽게 만들어 웹 2.0의 전성기를 이끈 메타는 중앙 집중형 시스템인 웹 2.0 시대에서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기 시작하자 웹 3.0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웹 1.0은 초기 인터넷을 말한다. 정보를 인터넷에 게시하고 사용자는 읽을 수만 있는 형태였다. 신문이나 잡지를 웹으로 옮긴 것이었다. 웹 2.0은 소비자도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블로그가 등장하며 레거시 미디어에 필적하는 권위를 가진 일반인들이 등장했고,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자 연예인 수준의 인플루언서들이 생겨났다.
웹 3.0은 이제 사용자가 정보의 주체가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의 소셜 미디어 게시물은 사용자의 것이 아니라 플랫폼 주체의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약관을 위반했다고 하면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계정은 플랫폼 소유주로부터 영구적으로 정지당할 수 있다. 반면, 웹 3.0의 경우 생산된 정보를 언제든 가져올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스레드 역시 웹 2.0의 토대 위에서 서비스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웹 3.0으로 옮겨갈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데, 액티비티 펍(Activity Pub) 도입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앱 서비스 계정끼리 DM 소통을!
액티비티 펍은 인터넷 통신 프로토콜의 하나로, 도입한 서비스끼리는 서비스를 넘나들며 포스팅, 팔로우, 좋아요 등을 남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메타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레드에 모두 액티비티 펍을 적용한다면, 스레드 계정으로 페이스북 인플루언서에게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고, DM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또한, 서비스를 이전하기도 편하다. 액티비티 펍 적용 서비스끼리는 한쪽을 탈퇴해도 원래 있던 게시물을 옮겨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이 지겨워 탈퇴한다면,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스레드로 모두 옮겨버리는 식이다. 이론상으로는 다른 회사의 서비스끼리도 정보 이동이 가능하다. 즉, 정보의 주체가 플랫폼이 아닌 사용자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기술적인 기반도 충분히 발전했다. 전통적인 서버-인터넷-사용자 시스템인 웹 1.0과 2.0에서는 데이터 센터와 서버의 존재가 필수였지만, 탈중앙화 서비스에서는 반대로 서버가 아닌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필수다. 사용자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PC나 스마트폰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연결해 서버 없이 정보를 주고받게 되는데, 이것은 웹 3.0의 기본 정신과 일치한다.
스레드의 게시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메타는 스레드에 이런 비전을 적용하면서도 굳이 이 설계를 외부에 홍보하지는 않고 있다. 이유는 당장 사용자들에게 중요한 건 핫 피플과의 멘션이지 탈중앙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 유출 사건·사고가 가장 많았던 빅테크 기업이 메타이기에 할 말이 없어서기도 하다. 특히 메타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기에 플랫폼을 갖고 있지 못하면 사업에 큰 위기가 올 수 있음을 여러 사건을 통해 체감하고 있다. 따라서 한쪽에서는 플랫폼을 만들고(오큘러스 스토어), 반대쪽에서는 문호를 활짝 개방해 서비스 완성도와 매력 그 자체로 승부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메타는 웹 3.0 소셜 미디어를 처음 만든 업체가 아니다. 마스토돈과 블루스카이 등이 이미 블록체인과 액티비티 펍을 사용해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이들은 월간 활성 사용자 수를 몇백만 명 정도 모을 정도로 흥행 중이지만, 시장을 잡아먹을 만큼 파급력이 있지는 않다. 소셜 미디어를 잘 만드는 메타는 현재까지 쌓인 여러 경험으로 인해 다른 기업보다 완성도 높은 웹 3.0 서비스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과연 스레드가 앞으로 쭉 성장할 수 있을까? 그것은 누구도 장담 못 한다. 트위터와 스레드 중 철창 매치에서 살아남는 쪽이 스레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스레드는 사라지더라도, 스레드가 구축한 ‘웹 3.0 소셜미디어의 원형’은 마치 고대 로마의 민주주의 체계처럼 역사에 남을 행보가 될 것이다. 디지털 트렌드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스레드에 관심을 두어야 할 이유다.
이종철
바이라인네트워크 기자. 전 월간 웹 편집장. 하드웨어, 플랫폼, 마케팅, UI · UX 관련 콘텐츠를 주로 작성하고 있으며, 앱 트렌드에 관심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