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 감독의 <빅피쉬>는 거짓과 진실, 주관과 객관, 그리고 추억과 왜곡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영화입니다. 한평생 모험을 즐겼다는 아버지 에드워드는 툭하면 “내가 왕년에 말이지~” 하며 아들 윌에게 무용담을 늘어놓습니다. 추억 속에서 아버지는 만능 스포츠맨에, 발명왕에, 해결사입니다. 한마디로 못 하는 게 없는 사람이었죠. 그 얘기들이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이라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도통 믿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병세가 위독한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있는 와중에도 “아버지의 거짓말을 입증하겠다”며 증거 수집에 열을 올립니다.
이 시점에서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 떠오릅니다. 므두셀라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거의 천 년 가까이 살았는데, 옛날이 좋았다면서 늘상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했다지요. 이 인물에서 유래한 므두셀라 증후군은 과거를 미화하고 포장하며, 좋았던 시절로 회귀하려는 심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므두셀라 증후군을 퇴행 심리로 진단하기도 합니다. 현실 도피를 위해 과거를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부풀려서 왜곡시킨다는 거죠.
하지만 므두셀라 증후군을 방어 기제로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과거가 아름답지 못해서, 초라하고 별 볼 일 없어서 밤마다 ‘이불킥’에 시달린다면 힘든 현실을 버텨낼 재간이 없겠죠. 내게도 곱씹을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 몇 개쯤은 있어야 자존감을 지키며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빅피쉬>에 등장하는 누군가는 “때로는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무용담이 거짓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아들에게 용기와 꿈을 주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 아니었을지, 그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곡진한 노력의 일종은 아니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과거를 미화하는 므두셀라 증후군과 달리 ‘순교자 증후군(Martyr syndrome)’은 과거를 불행하게만 바라보는 심리를 가리킵니다. ‘나는 늘 희생하며 살아왔어. 나는 피해자야!’라고 생각하는 거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과거를 ‘주관적’으로 미화하거나 포장하고 때로는 폄하하거나 부정하는 현상….
이것은 과거의 시간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잘못하면 얼토당토않은 의미로 둔갑해 버리듯, 과거의 기억 또한 잘 번역하지 않으면 현재와 미래에 엉뚱한 영향을 끼칠 겁니다. 요컨대 우리에겐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번역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요즘 의식주 전반에 걸쳐 뉴트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심지어 취미 생활까지도요. 올해 초 한 온라인 쇼핑몰이 발표한 2016~2019년 판매 증감률을 보면, 10~30대 젊은 층의 화폐‧주화‧우표 수집 관련 제품의 판매량이 2016년 대비 50%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또한 코로나19 여파로 외출이 줄면서 패션업계도 큰 타격을 입었지만, 뉴트로 디자인을 선보인 몇몇 브랜드들은 오히려 완판 신화를 기록했습니다.
지금 누군가는 뉴트로를 통해 이른바 ‘코로나 불황’을 타개할 묘수를 찾고 있습니다. 뉴트로 또한 결국은 과거라는 시간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의 문제일 겁니다. 제일매거진 6월호에서는 뉴트로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전략에 대해 살펴봅니다.
P.S.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번역하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