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삼 아흐메드(Ahsam Ahmad), 제일기획 중아총괄 D2C strategist & Analyst

(*AI로 생성한 이미지)
지금껏 열어본 모든 미디어 계획서는 대략 비슷하게 생겼다. 핵심은 그리드 구조다. 왼쪽에는 채널이, 상단에는 주간 단위가, 셀에는 예산이, 하단에는 도달률 곡선이 표시되어 있다. 보기만 해도 정말 마음이 차분해지는 문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는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하다. 그 그리드는 기술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광고를 접하게 될지는 알려줄 수 있지만, 내가 구매한 그 순간이 그들 중 누구에게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지는 말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 부서에 앉아 남 탓을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일주일 중 상당 부분을 바로 그런 스프레드시트 속에서 보낸다. 나는 전략 분야보다 데이터 분야에서 먼저 경력을 쌓았다. CPM, 증분 효과, 어트리뷰션 창에 대해 방 안의 사람들이 제발 그만해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어떤 계획이 “효율적”이면서도 동시에 생기가 없는 경우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효율성이라는 관점이 간과하는 것, 그리고 내가 이해하는 데에 수년이 걸렸던 것은, 이 지역에서는 똑같은 30초 분량의 광고 영상이라도 어디서나 똑같은 30초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후 3시에 방영하면 그저 배경화면이나 다름없다. 스크롤을 넘기거나, 소리를 끄거나, 그냥 사라진다. 하지만 이프타르(단식 해제) 30분 전, 하루의 리듬이 거의 멈춘 듯 느려지고,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약간 예민해지며 기대감으로 마음이 누그러진, 이례적으로 고요한 그 순간에 광고를 내보내면 완전히 다른 곳에 닿는다. 같은 광고 소재. 같은 타겟팅.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똑같다.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그 순간의 ‘사람들의 기분’뿐인데, 계획서에는 ‘사람들의 기분’을 반영할 항목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광고업계는 “광고가 전하는 메시지”와 “광고가 노출되는 장소”를 서로 다른 두 부서의 별개의 업무로 규정해 버렸다. 두 부서는 캠페인당 두 번 만나고, 나머지 시간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소통한다. 크리에이티브 팀은 콘텐츠를 만들고, 미디어 팀은 그 콘텐츠를 배치할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장소를 찾는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이음매—사실상 거의 모든 의미가 실제로 존재하는 곳—는 조용히 누구의 문제도 아닌 것이 돼버렸다.
나는 그 이음매야말로 업무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모든 프리롤 환경에서 테스트 결과가 좋지 않았던 광고가, 영화관 스크린에서는 관객들이 15분간의 휴식 시간을 갖는 동안 완전히 살아나, 관객들이 갑자기 매점에서 간식이나 청량음료를 사 먹고 싶어 하게 만드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크리에이티브 자체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관객들은 이미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이 그 감정을 느끼고 있을 그 순간에 맞춰 광고를 노출할 수 있는 안목을 가졌을 뿐이다. 어떤 유사 세그먼트도 ‘감정’을 포착하지 못한다. 어떤 플랫폼에도 “영화 중간 부분”이라는 체크박스는 없다. 그 배치는 어떤 추천 구매 목록에도 없었다. 그것은 실제로 그 영화관에 서서, 그 공간이 메시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한 누군가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데이터를 부정하는 주장은 아니다. 데이터 분석가가 그런 주장을 고수하며 목숨을 걸기에는 너무 이상한 일일 것이다. 데이터는 한 가지 특정 분야에서 탁월하다. 바로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가 침묵하는 질문이야말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다. 바로 ‘이 특정 장소에서, 이 특정 시간에 있는 것이 광고의 의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이다. 기계는 시선을 포착하는 데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정말로 서툴다. 왜냐하면 의미는 맥락으로 이루어져 있고, 맥락은 문화이며, 문화는 그 어떤 기계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유일한 데이터셋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아직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동화 시대에 전략가가 무엇을 더하는가 묻는다면, 내 솔직한 대답은 이렇다. ‘안목’, 그리고 모델의 예측에 반해 돈을 쓸 배짱, 그리고 그 결정이 옳았는지 같은 모델에게 솔직하게 물어볼 용기. 효율적인 계획과 아름다운 도달률 곡선을 보고도 “아니, 거기가 아니라 여기야”라고 말할 배짱. 비록 ‘여기’가 더 많은 비용이 들고, 모델이 왜 그것이 옳은지 설명해 줄 수 없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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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국의 마케팅 전문 매체 Little Black Book에 게재된 칼럼을 번역·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원문 : Where the Ad Lives Is Part of What It Says